▲우태훈 시인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시 ‘국화 옆에서’ 이번 칼럼에서는 대한민국에 사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 시인의 초기 작품은 원색적인 시를 써오다가, 그의 말년에는 동양사상의 작품을 주로 쓰게 됐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많은 작품을 썼으며, 한국의 시성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인지도는 높다. ‘국화 옆에서’라는 작품은 경향신문에 1947년 11월9일자에 실린 시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을날에 무서리가 내리고 이색적인 모습의 조화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계절과 잘 어울린다는 얘기기도 하다. 최근 단계적 일상회복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마지막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조치가 실시될 예정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는
▲우태훈 시인아무도 없는 집을 들어설 때마다 텅빈 하루처럼 일상의 북적임에 빼앗긴 나를 다시 찾아놓는 적요한 저녁 무렵 어쩐지 오늘은 사람 냄새가 난다. 푹 끓인 김치찌개에 데워진 냄비가 조금 전인 듯하다. 따뜻한 밥 한 공기가 기다리는 식탁 위에 올려진 정 오래도록 묵혀둔 이제는 낯설기까지한 행복이다. 거실 한 편에 빨래가 곱게 개어진 딸 아이의 고운 마음을 서랍에 담으면서 가끔은 낯설어도 행복한 이유가 되는 사는 맛이란 이런 게지. 우렁이각시 아니어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얼굴 이윽고 학원에서 나오며 상기된 인사말 “엄마, 저녁 먹었어요?” 정말 눈물나게 행복한 날이다. - 배월선, 시 ‘어떤 날은 낯설어도 행복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인터넷상 시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배월신 시인의 처녀작인 ‘어떤 날은 낯설어도 행복하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배 시인의 처녀시집인 ‘당신과 함께 가고 싶은 나라’에 수록된 것이기도 하다. 배 시인은 경남 창원 한마음병원에서도 근무했던 인물. 당시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창작력을 보여줬다. 이 작품을 살펴보면, 복
▲우태훈 시인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누군가가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지난 여름 장마에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싯누런 흙탕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그런데 더 조용히 옛날처럼 있습니다 깊은 시름, 깊은 슬픔, 깊은 후회 다 깊은 강처럼 흘러갔으나 흘러갔으나 흐르지 않고 거기 그냥 그렇게 있습니다 - 김창완, 시 ‘깊은 강처럼’ 이번 칼럼에서는 1942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화’로 당선돼 문인의 길을 걷고 있는 김창완 시인의 ‘깊은 강처럼’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창완 시인과 필자는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시와수상문학 내 시창작과정반에서 인연을 맺었다. 김 시인의 ‘깊은 강처럼’은 그의 시집 ‘나는 너에게 별 하나 주고 싶다’에 등장한다. 필자가 그동안 봤던 김 시인은 평소 우직하고 곧은 성품의 시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러한 성품은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강물이 흘러가도 변함없는 것은 강물이라는 것, 장마철 많이 흘러온 물들이 범람을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물이 평온을 되찾는 다는 것 등등 마치 시인의 강직한 성품에서 탄생한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문
▲우태훈 시인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신경림, 시 ‘그 길은 아름답다’ 이번 칼럼에서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동국대가 배출한 문학인인 신경림 시인의 시 ‘그 길은 아름답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정적인 시를 주로
▲우태훈 시인어머니의 젖가슴이 출렁이는 바다 가부좌 튼 달마상 하나 환한 미소로 떠 있다 물주름 잡힌 파도 행간으로 진동하는 녹내음의 파장이 댕댕 울리던 종소리 콧등 시큰하도록 한세상 울린 어머니의 기도가 두손 가득 바닷물 움켜쥐고 날 세운 갈고리 가슴 치다보면 살을 도려낼 때마다 피어나는 하얀 연꽃, 연꽃들 몇 억 만년 저 편에서 이 편으로 숙명처럼 떠 있는 풍경 울리며 비우고 또 비워낸 파도소리 파도가 치면 종이 울고 종이 울면 따라 우는 파도 비우고 또 비워낸 파도소리 파도가 치면 종이 울고 종이 울면 따라 우는 파도 - 한선향, 시 ‘파도가 종을 울린다’ 이번 칼럼에서는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한국시낭송가협회 및 백양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선향 시인의 작품 ‘파도가 종을 울린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시인의 시집 ‘비만한 도시’에는 불교의 색채가 짙다. 달마상 및 연꽃 등이 이를 방증한다. 파도를 엄니의 젖가슴에 비유하면서 달마의 환한 미소를 떠올린다는 문장도 그렇다. 어머니의 기도가 종소리처럼 울리고, 바닷물을 움켜지고 가슴치다보면 피어나는 하얀 연꽃의 그리움에 피어난다고 한다. 오랜 세월 숙명처럼 떠있는 풍경을 울리며, 비우고 비워ㅓ낸
▲장유리 교수요즘 뉴스, 미디어, SNS 등 가장 핫 한 뉴스는 ‘코로나19’이며 동시에 ‘정치 뉴스’가 아닌가 싶다!! 문화예술인 학자가 정치를 알면 얼마나 알겠나? 어쩌면 문외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소 역사의식, 문화의식을 강조하며 나름 국가론이 있다고 자부하는 필자로서 보편적 사고력을 가지고 정치와 예술의 공통점을 언급해 본다. “예술가도 고뇌하고 청치가도 고뇌한다” “현실을 외면한 예술,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문화” “현실을 외면한 정치, 현실과 거리가 있는 정치” 이들의 공통점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예술인들은 익히 잘 알고 있기에 작품을 창작하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때에는 대중과 호흡하고 공감하며 공유하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생산한다. 아울러 관객참여형인 이머시브 콘텐츠를 선보이며 관객과 함께 작품을 완성 시키는 실험적 작업들도 적자를 감수하며 거침없이 시도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얼마만큼 고민하고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이해하며 호흡하기 위해 다가가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선거 시즌에만 사리사욕을 위해 제법 솔깃하고 거창한 시나리오에 진정성이란 무기로 각색하여 팩트인양 연출하고 사기 쇼를 하
▲우태훈 시인희미해져 가는 당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내 사람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다니 사랑하기에 당신의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당신을 품에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했기에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가냘픈 목소리로 사랑해요, 한마디를 남기고 영영 떠나가다니 당신의 호흡소리가 가냘파질 때 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우리의 마지막이 이렇게 올 줄이야 해맑게 웃던 미소가 당신 얼굴에서 서서히 사라질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세상의 끈을 놓아 버렸습니다 당신이 떠나간 그곳을 향하여 나의 모든 것을 보냈습니다 또한 삶의 애착도 접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꺽꺽 소리내 울고 있습니다 -장성우, 시 ‘내 사랑을 보낼 때’ 이번 칼럼에서는 한민대학교(현 폐교) 총장 및 교수를 재직했던 장성우 시인의 ‘내 사랑을 보낼 때’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장 시인의 시집인 ‘카이로스의 만남에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장 시인은 목회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고, 필자와도
▲우태훈 시인가을은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지 별리가 순리이니 꽃들도 잎들도 햇살도 한곳에 멈추지 않아 바람이 곁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니니 고이는 것은 썩는 것. 지금 마주서 있는 당신과 나 당신 생각이나 내 생각이 언제까지나 같기를 바라는 것은 삶의 배반이 아닌가 곱게 물든 단풍미인 같은 당신을 살며시 놓아주고 싶어.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있기에 시들고 썩는 당신 모습 보고 싶지 않아서 돌아서는 당신이 보고파도 가슴 아련히 아련히 저며질지라도 마르지 않은 고운 당신 모습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픈 생각으로 놓아주고 싶어. - 이수, 시 ‘가을생각’ 이번 칼럼에서는 가을 계절과 딱 맞는 ‘가을’을 주제로 한 이수(본명 송달웅) 시인의 ‘가을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9월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시절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수 시인을 한 번쯤 마주할 필요가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언제까지나 당신 생각과 같기를 바라던 시인은 그것이 자신의 욕망일 뿐임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게 결실인 것을 알고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사랑했던 사람도 때가 되면 늙고 볼품 없어질 모습을, 썩는 당신 모습으로 낙엽과도
▲우태훈 시인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성산포에서는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 이외의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우태훈 시인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뜨고 방심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깍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어른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아롱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이형기, 시 ‘산(山)’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세 번째(시담 칼럼 기준) 작품인 ‘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 이 시인의 작품인 ‘낙화’와 ‘대’를 소개한 바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산’은 정적인 시이지만 내면에는 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에 젖은 가을 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수난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 싶으나 내적으로는 강렬한 저항 의지를 담은 작품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