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한때 도버해협 사이에 두고 피를 흘리며 싸웠던 프랑스와 영국은 오늘날 핵심 동맹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건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일본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함께 떠받치는 파트너다. 반대로 이념과 혁명을 공유했던 중국과 소련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무력 충돌까지 벌였다. 국제정치는 원래 그런 세계였다.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우정도 증오도 아니다. 결국 국익이다. 21세기에 들어 이러한 현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냉전 시절처럼 적과 동지가 선명하게 구분되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복합적 관계로 움직인다. 국제정치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네미(Frenemy)'의 시대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라는 뜻이다. 이 변화는 한반도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에 서 있다. 안보는 미국과 연결돼 있고, 경제는 중국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일본과는 안보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역사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한 나라를 친구로만 규정하거나 적으로만 규정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인류의 문명지도를 재편하는 지금, 국제사회는 기술의 이면에 숨은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소리 없는 ‘규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류 번영이라는 대의(大義)를 공유하면서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UN(국제연합)이라는 두 거인은 전혀 다른 속내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선진국 클럽’인 OECD는 기술의 신뢰성과 규제의 호환성에 방점을 찍는다. 국가별 규제 파편화에 따른 기업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실용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구축하는 것이 이들의 핵심 프로토콜이다. 반면 193개 회원국을 아우르는 보편적 기구인 UN의 시선은 ‘포용적 공생’으로 향한다. 기술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신식민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가 개도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 기술 혜택을 소외 없이 나누기 위한 ‘정치적·윤리적 정당성’ 확보가 UN의 최우선 가치다. 이들의 대립 이면에는 세 가지 전선(戰線)이 가로놓여 있다. 첫째는 미국·EU 중심의 기술 독점에 맞서 전 세계의 평등한 발언권을 요구하는 ‘규제 주도권’ 싸움이다. 둘째는 경제적 가치 선점을 노리는 ‘혁신론’과 인권 보호를 앞세운 ‘통제론’의 격돌
기술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환경이 되었다. 기차가 시간 개념을 바꾸고, 인터넷이 공간 감각을 재편했듯 기술은 인간을 이끌고 문명을 재구성해왔다. 그래서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인간 사회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반면 사회구성론은 기술 역시 인간의 가치와 의도, 시대정신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기술을 만드는가, 기술이 인간을 바꾸는가.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물리학이 이 두 관점을 충돌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이제 원자를 옹스트롬 단위까지 조작하며 새로운 물질과 양자 기술을 설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우리는 마치 우주의 설계자가 된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이라는 절대적 한계와 마주한다. 우주가 허용하는 최소 단위, 다시 말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경계다. 이 지점에서 우주는 거대한 디지털 시스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불연속적인 시공간은 픽셀처럼 보이고, 광속이라는 절대 제한은 하드웨어의 최대 처리 속도를 연상시킨다. 관찰되기 전까지 확률 상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빨리’를 요구한다.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주식 차트,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SNS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좀처럼 멈출 수 없는 ‘가속의 시대’를 살아간다. 잠시라도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우리를 재촉한다. 이러한 ‘쉼 없는 질주’는 어쩌면 대한민국 현대사의 DNA이기도 하다. 선배 세대는 주말마저 반납한 채 일터로 향했고, 그들의 헌신과 노동은 오늘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떠받친 토대가 됐다. 치열하게 주말을 지워가며 일했던 그들의 공헌은 분명 우리 사회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주말 근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평균보다 훨씬 길고, 유럽 주요 국가들과는 수백 시간의 격차를 보인다. 우리는 매년 한두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과잉 노동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번아웃과 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성실함이 국가의 기반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개인의 지속 가능한 삶과 행복을 위해 ‘멈춤의 지혜’를 고민해야 한다. 문득 이런 질문을
최근 중동 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현대 전쟁의 새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수천만 원짜리 자폭 드론 한 대를 막기 위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요격 미사일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은, 아무리 경제력이 강한 국가라도 장기적인 소모전 앞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 같은 ‘가성비의 역설’ 속에서 대한민국이 개발한 레이저 대공무기 ‘천광(Block-I)’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발당 약 2000원 수준의 경제성을 갖춘 이 무기는 기존 요격 체계의 비용 구조를 뒤흔들며, 단순한 무기 개발을 넘어 ‘경제적 국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조차 본격 실전 배치에 신중한 분야를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기술은 곧 국력이다. 그리고 첨단 기술의 핵심에는 언제나 ‘보안’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기술 패권국들은 자국의 전략 기술을 철저히 보호해 왔다. 미국이 세계 최강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 랩터를 단 한 대도 수출하지 않고, 기술 유출 우려 속 조기 단종까지 감행한 사례는 첨단 기술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임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 역시 바라볼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게 널려 있으면서도 가장 간과되는 존재가 바로 ‘돌’이다. 현대 도시는 아스팔트가 대지를 덮고 시멘트와 철근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날것 그대로의 돌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도심의 인공 구조물을 한 꺼풀만 벗겨내고 교외의 산과 들로 나가면, 우리는 여전히 대지의 뼈대인 수많은 돌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한반도는 전 세계 고인돌 통계의 40%에 달하는 3만여 기가 집중된 '돌의 나라'다. 이 거대한 돌들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수천 년 전 인류의 삶과 죽음을 증언하는 엄중한 기록물이다. 전통적인 정령주의(Animism)는 세상 만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영험한 바위 앞에 치성을 드리며 안녕을 빌었다. 하지만 종교적 관점을 떠나 돌을 그 자체로 바라보아도 그 존재감은 경이롭다. 돌은 인간의 찰나 같은 생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견뎌왔다. 수백만 년, 혹은 수억 년 동안 기류와 바람, 구름과 비, 서리와 이슬을 몸으로 받아내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다. 만일 돌에 기록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연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돌은 신이
일론 머스크는 최근 파격적인 예언을 하였다. 향후 3년 내에 우리가 아는 형태의 화폐가 소멸하고, ‘에너지’가 그 가치를 대신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한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다. 인류 문명이 디지털 변화를 넘어 인공지능(AI), 그리고 물리적 실체를 가진 ‘피지컬 AI(Physical AI)’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 세계의 지능이 현실의 기계를 움직이는 시대, 그 거대한 기계 문명을 지탱하는 혈류는 다름 아닌 ‘전기에너지’다. 기술의 진화, 에너지가 곧 권력인 시대 현재 인류의 기술 문명은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기존의 슈퍼컴퓨터는 이제 그 임무의 바톤을 양자컴퓨터에게 넘겨주고 있으며, 석유를 태우던 내연기관 자동차는 전기자동차(EV)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이 모든 피지컬 AI와 차세대 하이테크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은 전력이다. 에너지의 저장과 생산 방식 역시 혁명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전기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넘어, 안전성과 고용량을 동시에 확보한 전고체 배터리로 발전 중이며, 이는 다시 도시 단위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확장되고 있다. 전력 생산 또한 수력과 화력을
범용 인공지능(AGI)이 재구성하는 인류의 삶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기술적 능력을 추월하는 이른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의 도래는 단순히 도구가 바뀌는 수준을 넘어 인간 삶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 이후 인류가 마주할 변화의 풍경을 네 가지 핵심 영역으로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첫째, 노동의 해방인가 존재의 위기인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일(Work)’의 개념 변화다. 사무직, 전문직, 창작 영역까지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면서 생계를 위해 시간을 파는 노동의 시대가 저문다. 그 결과 인간은 ‘생산자’에서 ‘감독자’ 혹은 ‘취향의 결정자’로 변모한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인지 외주화’와 사고방식의 변화다. 인간의 뇌가 담당하던 논리적 추론과 기억을 AI에게 맡기게 됨에 따라 복잡한 수식 계산뿐만 아니라 글쓰기, 기획, 의사결정까지 AI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일상화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지식의 양보다는 ‘질문의 질(Prompting)’과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