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뜨고 방심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깍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어른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아롱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이형기, 시 ‘산(山)’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세 번째(시담 칼럼 기준) 작품인 ‘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 이 시인의 작품인 ‘낙화’와 ‘대’를 소개한 바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산’은 정적인 시이지만 내면에는 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에 젖은 가을 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수난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 싶으나 내적으로는 강렬한 저항 의지를 담은 작품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우태훈 시인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연하면서도 소박한 일상과 자연에서 시 소재를 찾아 섬세한 가락을 만든 박재삼 시인의 작품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소개하고자 한다. 1933년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이후 경남 삼천포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은사 김상옥 선생을 만나 문단 생활에 발을 디딘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역시 제삿날을 맞아 큰집에 찾아가며 저녁 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면서 인생에 대한 상념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근원적인 한을 보편적인 자연현상인 강물의 흐름을 보면서 삶을 비유한 작품이라 하겠다.
▲우태훈 시인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시 ‘서시’ 이번 칼럼에서는 북간도에서 출생해 일제시대를 살다 간 윤동주 시인의 작품 ‘서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삶의 진정성을 추구한 작품으로 다분히 잠언적 성격이 농후하다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윤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을 간 다음 해인 1941년 11월20일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선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윤 시인의 결연한 각오가 작품에 잘 녹아있다. 즉 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순수하고도 양심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했을 것이다. 8일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대장의 장례 절차가 산악인들의 애도 속에 마무리됐다.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드날리 등반 당시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도 장애인 최초 ‘7대륙 최고봉’ 및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등산가다. 김 대장의 도전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주기도 했다. 김 대장이 보여준 삶은 윤 시인이 쓴 서
▲우태훈 시인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이번 칼럼에서는 국민들이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인 김소월 시인의 작품 ‘엄마야 누나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일제강점기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을 노래하는 듯한 작품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엄마야 누나야’도 우리 민족의 한을 노래하는 내용의 시로 꼽힌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로운 삶을 소망한다. 요즘처럼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는 일찍이 없었다. 인심이 흉흉해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주요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필수로 하는 군대에서조차 요즘은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있음을 느낀다. 연일 발생하는 군대 내 성폭행 사건이 그렇다. 국방부와 국회 국방위원회 자료를 살펴보면, 군대 내 성관련 규정 위반 징계 처리 현황은 지난 2014년 1091건에서 2019년 1122건으로 증가했다. 여군 성폭력 피해는 지위가 낮은 부사관에 집중됐고, 군대 내 동성간 성폭행도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역의 의무
▲우태훈 시인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우태훈 시인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 ‘청포도’ 이번 칼럼에서는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 시인의 시 ‘청포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인의 이름은 원록이라고 한다. 그는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그는 시를 통해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했다. 청포도란 시는 1939년 ‘문장’ 8월호에 출품작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이 시인은 17회나 감옥에 투옥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많은 시를 써서 명성을 남겼다. 특히 광야, 절정이라는 작품을 통해 조국 광복의 염원을 강한 신념처럼 담아냈다. 청포도란 시 역시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삶을 염원하면
▲우태훈 시인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시 ‘승무’ 이번 칼럼에서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1920년 12월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조 시인은 식민지 치하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전쟁의 비극적 국면을 시화한 인물로 정평이 났다. 더욱이 정지용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자연과 인공의 극치’라고 말하고, 우리말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시라고 조지훈 시인의 작품들을 극찬했다. 특히 이 작품은 조 시인이 20세일 때의 일이다. 그의 시적 천부
▲우태훈 시인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시 ‘깃발’ 이번 칼럼에서는 1908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유치환 시인의 작품 깃발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 시인은 이 작품에서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깃발을 통해 형상화했다. 이상과 현실사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깃발에 비유해 표현하고자 한 시인은 충족될 수도 없는 향수를 영원한 향수로 남겼다. ‘깃발’은 바람이 부는 대로 소리 없이 흔들린다. 아우성 치듯이 말이다. 넓은 바다를 향해서 돗대가 흔들리듯 깃발은 흔들리며 전진한다. 작금의 여야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주자들이 여러 명 등장했다. 그들은 각기 대선공약과 정치이념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주자는 단 한 명일 것이다. 정상에 깃발을 꽂는 것은 누가될 것인가. 대선주자와 유권자는 꿈과 희망을 안고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깃발의 운명을 안고 가는 우리 국민들
▲우태훈 시인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찬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번 칼럼에서는 김영란 시인의 작품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소개하고자 한다.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과를 수학했다. 그는 지난 1934년 4월 ‘문학’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로 유미주의적 작품이다. 봄을 기다리고, 봄을 상실하고, 봄을 기다리는 순환적 구조를 지니는 이 작품은 희망을 노래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정치권에 눈에 띄는 인물을 찾은 것과 연관이 깊다. 30대 청년인 이준석 당대표를 선출한 국민의힘은 ‘나는 국대다’라는 대변인직 선출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 자
▲우태훈 시인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서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동방의 등불’ 이번 칼럼에서는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시인의 작품인 ‘동방의 등불’을 소개하고자 한다. 1861년 인도 벵골 지방인 캘커타에서 태어난 타고르 시인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을 유학한 바 있고, 명문가문 출신으로 종교 및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문학에 힘을 썼다. 더욱이 이번에 소개하는 동방의 등불은 타고르 시인이 1922년 일본을 방문하면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 방문 요청에 응하지 못하자 미안한 마음에 <동아일보>에 기고한 시로 유명하다. 이 시는 서두에 우리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