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얼마나 힘들었느냐 석 달 열흘을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고뇌에 찬 결단을 하였구나 비록 그 길이 힘들고 험난할지라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었지 깨달음을 얻고자 뜻을 세우고 출가를 하였지 얼마나 아름다우냐 홍운돈월법 아름답고 신비롭구나 지혜의 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구나 -우태훈, 시 ‘미륵반가사유상과의 대화’ 필자의 등단 초기 작품인 ‘미륵반가사유상과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본인이 지난 2012년 2월 출간한 시집 ‘겨울바다’에 수록됐다. 반가사유상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부처님이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을 받치는 모습의 상’이다. 이 자세에서 생각에 잠긴 부처님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직면하는 인간사에 대한 번뇌’를 수차례 고찰했다고 한다. 우리 인간사를 잘 보여줘서일까. 이 상은 우리나라 국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모두 한 번 뿐인 소중한 삶을 각자의 방향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숱한 고통 및 번뇌를 직면하게 된다. 필자 또한 포괄적인 행복과 웃음을 겪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수차례 고통과 번뇌를 직면해야 했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때문인 것
▲우태훈 시인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 시 ‘참회록’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고민하던 철인(哲人)’으로 정평이 난 윤동주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참회록’이다. 이 시는 윤 시인이 창씨개명을 하기 닷새 전에 지은 작품으로 정평이 났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 반성과 성찰 등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렇다. 후회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성찰하고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서다. 주된 예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렇다. 정치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크나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뿐인가. 과거
▲우태훈 시인‘넌 참 예쁘게 생겼구나’ 했더니 쌩끗 웃는다. ‘송편은 먹었니’ 했더니 ‘회소회소’하며 쌩끗 웃는다. ‘넌 몇 살이니’ 했더니 ‘신라 유리왕 9년에 태어났다’며 쌩끗 웃는다. ‘넌 이름이 뭐니’ 했더니 ‘가배(嘉俳)’라며 쌩끗 웃는다. -우태훈, 시 ‘한가위 보름달’ 우리나라 대표명절인 추석이 찾아왔다. 고유명절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추석과 연관 깊은 필자의 본작(本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한기위 보름달’이다. 이 시는 본인이 지난 2013년 12월 출간한 시집 ‘내 고향 인천광역시’ 내 6부에 수록된 시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 가운데 추석과 관련된 시 역시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본작을 소개하는 이유는 ‘추석에 대한 간결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실제 국민 중 다수는 ‘추석’을 떠올릴 때 ‘길게 쉬는 날’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당장 밖에 있는 아무 사람을 붙잡고 ‘추석의 유래’를 물어보자. 바로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또 다른 대표명절인 ‘설날’도 마찬가지일 터다. 본작에는 추석을 상징하는 ‘송편’ 및 ‘신라 유리왕’, ‘회소회소’, ‘가배’ 등 단어들이 사용됐다.
▲우태훈 시인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 ‘님의 침묵’ 독립운동가 겸 승려·시인으로 정평이 난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님의 침묵’이다. 필
▲우태훈 시인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김소월, 시 ‘초혼(招魂)’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민족의 한과 슬픔을 읊은 ‘서정시의 대부’ 김소월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초혼이다’ 초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 생소한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민족 전통상례의 한 절차인 고복의식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초혼이란 ‘사람의 혼이 떠났으나 설움이 간절해 다시 살려내려는 소망’을 함축한 말이다. 김소월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이름이여” “사람이여” “부르노라”등 망자의 이름을 직접 세 번 부르는 고복의식의 절차를 문
▲우태훈 시인 아세아에 대죠선이 자주 독립 분명하다 (합가) 애야에야 애국하세 나라 위해 죽어 보세. 분골하고 쇄신토록 중군하고 애국하세. (합가) 우리 정부 높여 주고 우리 군면 도와주세. 깊은 잠을 어서 깨여 부국강병 진보하세. (합가) 남의 천대 밧게 되니 후해 막급 업시하세. 합심하고 일심되야 서세 동점 막아보세. (합가) 사농공상 진력하야 사람마다 자유하세. 남녀 업시 입학하야 세계 학식 배화 보자. (합가) 교육해야 개화되고, 개화해야 사람되네. 팔괘 국기 높히 달아 육대주에 횡행하세. (합가) 산이 놉고 물이 깁게 우리 마음 맹세하세. - 이필균, 개화가사 '애국하는 노래' 1896년 5월9일자 ‘독립신문’에 이필균이 투고한 개화가사 겸 운문이다. 저자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전체가 6연의 분연체로 구성된 이 개화가사는 4-4조의 4음보 율격 및 1연이 두 개의 행으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또 눈여겨 볼 점은 이 작품의 저자인 이필균씨는 당시 ‘학부의 주사를 한 사실 외에 알려진 게 없는 부분이다. 이 개화가사 겸 운문으로 칼럼의 첫 시작을 알리고자 한다. 당시 개화가사가 ‘계몽을 통한 애국’을 표현하고자 한 것처럼, 본인 또한
▲장유리 교수오늘날 K Pop, K 무비, K 드라마 등 한류가 세계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어르신세대들로부터 시작됐다. 따라서 그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뤄진 사회적 발전에 바탕 한 영광의 열매라는 점을 어르신들께 감사드려야 한다. 어르신 세대들이 겪은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 조국독립과 이념의 전쟁으로 인한 민족분단, 가난과 빈곤에서 산업화로 가는 길, 독재와 민주 화로 가는 길, IT강국 첨단한국 등 인류현대사의 인문사회과학 실험의 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훈장으로써 영광의 세대란 자부심을 고취 시키고 젊은 세대에게 고령층에 대한 존중의 인식변화 도출을 기대한다. 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어르신들이 필요로 하는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런 선순환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사회 전체의 문화생활을 향상 시키는 사회적 서비스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실버세대들의 문화적 소양의 향상은 사회의 발전과도 밀접하게 관계함으로 선지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빛이요 희망이다. '문화즐김'이란 단순히 시간을 보내거나 수동적 활동에서 끝나는 과거의 고전적 즐거움 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참여하는 능동적인 활동으로
▲장유리 교수내 나이가 어때서? 잘 익은 당신!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사람이 있고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자기를 썩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고자기를 익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노령인구의 문화적 소외 현상 심화에 따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접근이 용이한 환경 제공 및 지리적 접근을 쉽게 하여 소외계층의 어르신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의 증가로 연결되며 어르신이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문화 즐김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증가시키며 문화 소외를 해소하기 위하여 문화 바우처, 소외계층 문화순회 활동, 예술교육지원 등 문화향수 기회와 예술 활동 참여 외에 다양한 생활예술 및 생활문화의 영역의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특히 경로당, 복지센터 등은 생산적 여가문화공간으로 전환, 노인의 문화 활동 향유 기회증진, 노인자조 및 새로운 인생설계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 등을 제시하여
▲장유리 교수“노인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불에 탄 것과 같다.” 아프리카 속담에 등장하는 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을 하나의 박물관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노인들이 세상을 살아온 시간과 경험을 존중하는 뜻을 지니기도 했다. 그렇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층은 ‘살아 숨 쉬는 지혜의 보고’다. 우리는 줄곧 말한다. 많은 경험을 가진 노년층과 의욕이 넘치는 청년들이 조화를 이룬다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어떠할까. 씁쓸하게도 이상과 많이 다른 수치를 직면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지난 2011년 이후 6년 사이 21% 이상 감소했으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전체 평균보다 2배 가량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작년 6월11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2019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상 자살사망자 수는 1만2463명으로 전년(1만3092명)보다 629명(4.8%) 감소했다. 노인(65세 이상) 자살률은 58.6명(2015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18.8명)의 3배가 넘는 1위를 기록했다. 노인자살률의 원인은 ▲노동력 상실
▲장유리 교수“틀딱충.” 최근 젊은 세대가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신조어라고 한다. 틀딱충이란, 젊은 세대가 현 노년층을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속상했다. 필자 역시, 아니 ‘틀딱충’이라고 말하는 젊은 세대도 언젠가는 ‘틀딱충’이 될 터. 그럼 우리는 모두 노년층에 접어들 때 틀딱충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간 쌓아온 경륜을 우리사회에 융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매개체는 없는 걸까. 곰곰이 고민을 해봤다. 고민의 실마리는 필자가 속한 문화예술콘텐츠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화예술콘텐츠를 활용한 이른바 ‘실버잡(노년층 일자리)’을 만드는 것이다. 문화콘텐츠와 실버잡의 융합을 언급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는 젊은 세대와 가까운 분야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콘텐츠가 노년층과 융화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역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역사문화콘텐츠를 만드는데 노년들의 경험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노년층과 역사문화콘텐츠의 융화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파주 이야기가게’가 그 예다. 이름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만, 이 가게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수집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탄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