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26조2000억 원 규모의 이른바 ‘전쟁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다. 고유가 부담 완화와 민생 안정, 공급망 대응을 위한 긴급 재정 투입이라는 점에서 정책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재정 운용의 원칙까지 흐려서는 안 된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고유가 대응이다. 정부는 전체 재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10조1000억 원을 에너지 가격 부담 완화에 배정했고,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제유가 급등이 곧바로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단기 충격을 흡수하려는 정책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긴급성’과 ‘효율성’ 사이의 균형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구조적·대외적 요인의 영향이 큰 만큼, 현금성 지원이 실제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원금이 소비 진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경우 정책 효과가 빠르게 희석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단기 처방이 반복되면 재정 의존만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재원 조달 방식 역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정부는 초과 세수와 기금 재원을 활용해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마련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초과 세수 역시 경기 변동에 따른 일시적 요인일 뿐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경기 둔화 국면에서 세입이 줄어들 경우 재정 여력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특히 추경이 반복적으로 편성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추경은 본래 예상치 못한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예외적 수단이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 때마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 관행화된다면, 재정 건전성은 물론 정책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속도 경쟁보다 정책 설계의 정밀성이 우선돼야 한다. 지원 대상의 적정성, 산업 지원의 실효성, 예산 집행의 투명성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특히 에너지 가격 안정이라는 목표가 단기 보조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구조적 대응 전략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전쟁과 국제 정세 불안은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러나 재정 운용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위기 대응은 필요하지만, 그 방식이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판단이 요구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추경’이 아니라 ‘효과 있는 추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