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 ‘청포도’ 이번 칼럼에서는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 시인의 시 ‘청포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인의 이름은 원록이라고 한다. 그는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그는 시를 통해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했다. 청포도란 시는 1939년 ‘문장’ 8월호에 출품작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이 시인은 17회나 감옥에 투옥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많은 시를 써서 명성을 남겼다. 특히 광야, 절정이라는 작품을 통해 조국 광복의 염원을 강한 신념처럼 담아냈다. 청포도란 시 역시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삶을 염원하면
▲우태훈 시인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시 ‘승무’ 이번 칼럼에서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1920년 12월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조 시인은 식민지 치하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전쟁의 비극적 국면을 시화한 인물로 정평이 났다. 더욱이 정지용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자연과 인공의 극치’라고 말하고, 우리말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시라고 조지훈 시인의 작품들을 극찬했다. 특히 이 작품은 조 시인이 20세일 때의 일이다. 그의 시적 천부
▲우태훈 시인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시 ‘깃발’ 이번 칼럼에서는 1908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유치환 시인의 작품 깃발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 시인은 이 작품에서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깃발을 통해 형상화했다. 이상과 현실사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깃발에 비유해 표현하고자 한 시인은 충족될 수도 없는 향수를 영원한 향수로 남겼다. ‘깃발’은 바람이 부는 대로 소리 없이 흔들린다. 아우성 치듯이 말이다. 넓은 바다를 향해서 돗대가 흔들리듯 깃발은 흔들리며 전진한다. 작금의 여야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주자들이 여러 명 등장했다. 그들은 각기 대선공약과 정치이념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주자는 단 한 명일 것이다. 정상에 깃발을 꽂는 것은 누가될 것인가. 대선주자와 유권자는 꿈과 희망을 안고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깃발의 운명을 안고 가는 우리 국민들
▲우태훈 시인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찬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번 칼럼에서는 김영란 시인의 작품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소개하고자 한다.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과를 수학했다. 그는 지난 1934년 4월 ‘문학’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로 유미주의적 작품이다. 봄을 기다리고, 봄을 상실하고, 봄을 기다리는 순환적 구조를 지니는 이 작품은 희망을 노래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정치권에 눈에 띄는 인물을 찾은 것과 연관이 깊다. 30대 청년인 이준석 당대표를 선출한 국민의힘은 ‘나는 국대다’라는 대변인직 선출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 자
▲우태훈 시인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서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동방의 등불’ 이번 칼럼에서는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시인의 작품인 ‘동방의 등불’을 소개하고자 한다. 1861년 인도 벵골 지방인 캘커타에서 태어난 타고르 시인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을 유학한 바 있고, 명문가문 출신으로 종교 및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문학에 힘을 썼다. 더욱이 이번에 소개하는 동방의 등불은 타고르 시인이 1922년 일본을 방문하면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 방문 요청에 응하지 못하자 미안한 마음에 <동아일보>에 기고한 시로 유명하다. 이 시는 서두에 우리나라의
▲우태훈 시인밀짚 바구니 속에서 아버지는 종이 뭉치 하나를 골라낸다. 그러고는 궁금해하는 아이들 앞에서 물통 속에 그걸 집어넣는다. 그러자 알록달록한 커다란 일본 꽃이 솟아난다. 즉흥의 연꽃 신기하여 아이들은 입 다물고 말이 없다. 훗날 그 아이들 추억 속에서는 저희들을 위하여 문뜩 피어난 이 꽃은 저희 앞에 그 순간에 피어난 이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겠네. - 쟈크 프레베르 ‘국립미술학교’ 이번 칼럼에서는 프랑스인들에게 사랑 받는 시인 중 한 명인 쟈크 프레베르 시인의 ‘국립미술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 1900년 프랑스 파리 교외인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난 프레베르 시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를 떠올릴 수 있는 시를 써서 희망을 줬다. 프레베르 시인은 평화주의자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 그 시 중 대표적인 시가 바로 ‘국립미술학교’가 아닐까 싶다. 국립미술학교 작품을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정치권 소식과 연관이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했다. 신임 당대표는 ‘30대 젊은 청년’인 이준석씨다. 이준석 신임 대표가 앞으로 선보일 행보는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우태훈 시인나의 떨리는 리라를 이름 높은 사람의 공훈과 불길 솟는 노래에 맞추리라. 용솟음치는 높은 가락으로 그 옛날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또한 티레의 카드무스가 멀리 방랑했을 때 어떻게 그들이 싸우고 나라들이 망했는가를 노래하리라. 그러나 전쟁의 노래를 모르는 나의 리라는 어느덧 사랑의 노래만을 타고 있다. 장차 명성을 떨칠 희망에 불타 나는 숭고한 영웅의 이름을 얻고자 했다. 사라지는 줄을 다시 울리니 나의 리라는 전쟁에 맞춰진다. 불타는 줄로 다시 한 번 영웅곡을 타리라. 주피터의 위대한 아들을 위하여, 머리 아홉 달린 뱀 히드라를 팔로 눌러 죽인 알키데스의 빛나는 공훈을 위하여. 그러나 모두가 허사로다 나의 방종한 리라는 부드러운 욕망의 백은곡을 울리고 있다. 잘 있거라 세상에 이름 떨친 영웅들이여, 잘 있거라 무서운 전쟁의 어지러운 소리여, 그것과는 다른 일들에 내 마음 울렁거린다. 더 아름다운 곡을 타리라. 나의 리라 온갖 역량 다하여 내 마음에 느끼는 곡을 타리라. 사랑이다, 사랑만이다, 나의 리라가 바라는 것은, 행복의 노래 속에서 불 뿜는 탄식 속에서. - 조지 고든 바이런, 시 ‘아나크레온의 사랑 노래’ 이번 칼럼에서는
▲우태훈 시인노란 숲 속 두 갈래길. 나그네 한 몸으로 두 길 다 가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덤불 속 굽어든 길을 저 멀리 오래도록 바라보았네. 그러다 다른 길을 택했네. 두 길 모두 아름다웠지만 사람이 밟지 않은 길이 더 끌렸던 것일까. 두 길 모두 사람의 흔적은 비슷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날 아침에는 두 길 모두 아무도 밟지 않은 낙엽에 묻혀 있었네. 나는 언젠가를 위해 하나의 길을 남겨 두기로 했어.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법 되돌아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말하겠지. 언젠가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시 ‘걸어보지 못한 길’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이 낳은 문호 ‘로버트 리 프로스트’ 시인의 작품 ‘걸어보지 못한 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스트 시인은 1961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자작시를 낭송해 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프로스트 시인의 당시 인기는 엄청났다. 전통적인 농장 생활에 관한 시를 씀으로서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특징이 있던 것. 특히나 그는 인유나 생략
▲우태훈 시인유독 시월 바람이 서릿발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 괴롭힐 때면, 움켜잡는 태양에게 붙들려 불 위를 걸으며, 땅위에 게의 그림자를 던진다. 바닷가, 새들의 지껄임을 들으면서 겨울 막대기 사이 까마귀 기침 소릴 들으면서 떨며 지껄이는 바쁜 내 심장 마디마디 피 흘려 낱말들을 쏟아낸다. 또한 낱말 탑에 갇혀서 나는, 지평 위에 나무처럼 걷고 있는 여인들의 수다스런 모습과 공원의 별 몸짓한 아이들 소릴 본다. 당신에게 홀소리의 너도나무로 몇 마디 말을 지어 드리지 또는 참나무 목소리로, 가시 돋힌 지방의 뿌리에서 당신들게 몇 가락 들려 드리지. 물의 말씀으로 몇 줄 말을 지어 드리지. 은화식물 화분 뒤 까딱대는 시계가 시간의 말을 들려주고, 신경성의 의미가 지침 달린 원판 위를 난다, 아침을 웅변한다. 그리고 수탉 풍향계 속 바람 찬 일기를 알린다. 당신들게 초원의 신호로 몇 마디 지어 드리지. 나가 다 아는 소리 말하는 신호 깃발 초목이 벌레 꿈틀대는 겨울과 더불어 눈알 속에 파고든다. 까마귀의 죄에 대해 몇 마디 해드리지. 유독 시월 바람이 거미 혓바닥의 가을 주문으로, 웨일스의 큰 목소리 산으로 당신들게 몇 마디 지어 드리지. 무의 주먹으로 땅을 괴롭
▲우태훈 시인하릴없는 왕으로서, 이 적막한 화롯가, 불모의 바위 틈서리, 늙은 아내와 짝하여, 먹고 자고 욕심만 부리는 야만 족속에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나 베푼다는 것, 쓸모없는 짓이다. 방랑을 쉴 수 없는 나, 인생을 찌꺼기까지 마시련다. 나를 따르는 자들과, 또는 혼자서 언제나 크낙한 즐거움 맛보고, 또는 크낙한 고난 당하였으니, 물에서 또한 달리는 구름 사이로, 비에 젖은 히아데스 성좌가 검푸른 바다를 노엽게 할 때 이제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린 나. 굶주린 심정으로 방랑하면서 본 것, 배운 것도 많다. 혹시는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 모르나, 혹시는 행복의 섬에 닿아 우리 옛 친구 위대한 아킬레스 다시 보리라. - 테니슨, 시 ‘율리시스’ 이번 칼럼에서는 1809년 영국 링컨셔의 서머스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테니슨 작가의 시 ‘율리시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테니슨 시인은 영국 남작의 귀족 칭호를 받은 인물로도 정평이 났다. 특히 그는 문학적인 업적만으로 귀족 칭호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테니슨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인류의 고난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연인 “혹시는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 모르나, 혹시는 행복의 섬에 닿아 위대한 아킬레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