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해 ‘의미 있는 진전’에 안주해선 안 된다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에 설치했던 관리플랫폼을 이동 조치한 것을 두고 정부가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한 것은 외교적 성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제기해온 문제의식이 일정 부분 반영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곧바로 신뢰 회복이나 갈등 해소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하다. 서해는 여전히 한중 간 해양 안보와 주권 문제가 교차하는 고위험 공간이며, 안보 태세는 오히려 더 강화돼야 한다.

 

잠정조치수역은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민감한 해역으로, 어느 일방도 현상 변경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전제돼 있다. 중국의 구조물 설치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한 사례였다. 이번 이동 조치 역시 우리 측 문제 제기에 대한 ‘부분적 조정’일 뿐, 재발 방지에 대한 제도적·정치적 보장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은 ‘자체 수요에 따른 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책임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 이는 향후 유사한 구조물이 다시 설치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해석 여지를 남긴다. 실제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도 단계적 조치와 기정사실화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온 전례가 있다. 서해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부가 강조한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라는 비전은 외교적 수사로는 충분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 안보 역량 없이는 공허해질 수 있다. 서해 해역에 대한 상시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해양경찰과 군의 협조를 통한 대응 매뉴얼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잠정조치수역 내 활동에 대한 양국 간 구속력 있는 합의 도출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외교는 성과를 축하할 때보다, 상대의 의도를 냉정하게 분석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번 중국의 구조물 이동은 분명 진전이지만, 동시에 경고 신호이기도 하다. 정부는 외교적 대화의 문을 열어두되, 해양 주권과 안보에 있어서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태세를 견지해야 한다. 서해를 지키는 힘은 환영의 메시지가 아니라, 준비된 안보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