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과 인터넷 차단이 국가를 지킬 수는 없다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가 최소 538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시민의 항의에 대한 국가의 응답은 대화가 아니라 총탄이었고, 비판에 대한 해법은 개혁이 아니라 인터넷 차단이었다. 이는 단지 한 권위주의 국가의 비극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부재한 사회가 어떤 결말로 향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위의 발단은 경제난이었다. 통화 가치 폭락과 생계 위기에 몰린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권력이 선거로부터 정당성을 얻지 않고, 시민의 동의가 아닌 강압으로 유지될 때, 불만은 언제나 ‘치안 문제’로 치환된다. 이란 당국이 선택한 무차별 진압은 자유로운 정치적 경쟁과 권력 교체의 통로가 막힌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대응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단순히 선거를 치르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나오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 시민이 비판하고 교체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존재하는 데 있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폭력적 붕괴를 막는 ‘안전밸브’다. 이란에서 그 안전밸브는 오래전에 제거됐다.

 

팔레비 왕세자의 귀국 가능성 발언은 체제 전환의 해법이 될 수도, 또 다른 혼란의 변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복귀 여부가 아니라, 이란 시민들이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하고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수입되는 체제가 아니라, 내부에서 축적된 갈망과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다.

 

국제사회 역시 이 사태를 단순한 ‘중동의 불안정’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자유와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내세운다면, 총칼로 시민을 침묵시키는 권력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자유를 억압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다.

 

이란의 비극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권력이 시민의 목소리를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장치다. 지금 이란의 거리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단지 질서가 아니라, 그 장치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