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서방 주요국과 일본이 이란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는 상황을 “인지하고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며 기존의 신중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과 국익을 고려한 선택일 수 있으나, 전략적 모호성이 언제까지 외교적 해법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는 핵심 수송로다. 한국 역시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해협 통항 문제가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할 경우 한국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인 파장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이번 공동성명에서 한국만 빠진 것은 국제사회에 다소 모호한 신호를 줄 수 있다.
물론 정부의 고민도 이해할 만하다. 미국의 동참 압박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성급한 입장 표명은 군사적 개입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중동 지역과의 외교·경제 관계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군사 자산 파견은 대부분의 국가가 부담을 느끼는 사안이다. 정부가 신중론을 택한 배경에는 이러한 복합적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단 이번 공동성명은 군사 행동이 아니라 규탄이라는 외교적 메시지에 가까웠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주요 우방국들이 ‘행동’이 아닌 ‘입장’을 통해 국제 공조의 틀을 유지하려 한 상황에서 한국의 침묵은 필요 이상의 거리 두기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외교에서 모호성은 때로 유용하지만, 반복될 경우 책임 회피나 전략 부재로 비칠 위험도 있다.
특히 동맹국과의 공조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원칙과 기준 없이 상황별 대응에 머문다면 향후 더 큰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도 있다. 전략적 모호성은 목표가 아니라 과도기적 수단이어야 한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입장을 명확히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외교적 신뢰는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단이 아니라 분명한 원칙이다. 에너지 안보, 동맹 관리, 지역 안정이라는 세 가지 축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한계를 국민과 국제사회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모호성은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어도 방향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정부가 신중함을 유지하되, 그 신중함이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