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신옥 기자 |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가 “내가 누구에게 전화하려고 했지?” 하고 멈칫한 경험. 베란다에 나갔다가 왜 나왔는지 몰라 다시 거실로 들어온 기억.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던 순간. 이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를 의심한다.
‘혹시 치매 아닐까.’
치매가 암보다 더 두려운 병처럼 인식되는 시대다. 사소한 건망증도 삶 전체를 위협하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뇌과학은 말한다. 단순한 깜빡임과 치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정상적인 노화는 ‘속도의 저하’다. 정보 저장과 인출이 예전만 못할 뿐이다. 세부적인 기억은 흐릿해져도 힌트를 주면 “아, 맞다” 하고 되살아난다. 정보는 저장돼 있다. 다만 꺼내는 통로가 잠시 막혔을 뿐이다.
반면 치매는 ‘시스템의 붕괴’다. 사건 자체가 통째로 사라진다. 힌트를 줘도 기억을 복원하지 못한다. 판단력과 일상 유지 능력도 함께 무너진다. 익숙한 길에서 방향을 잃고, 돈 관리를 실수하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 성격도 변한다. 전두엽 기능이 손상되며 분노 조절이 어려워지고 근거 없는 의심이 늘어나기도 한다.
노화는 기능이 느려지는 것이지,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시냅스 전달 속도가 감소할 뿐, 오히려 경험과 통합적 판단력은 깊어진다. 뇌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며 스스로를 최적화한다.
치매는 다르다. 해마가 위축되고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축적되며 신경세포 연결이 실제로 파괴되는 구조적 변화다. 노화가 ‘속도 저하’라면 치매는 ‘고장’이다.
“나이 들면 다 치매 온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틀렸다. 80세 이상에서도 치매 없이 건강한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더 희망적인 사실은 뇌에 ‘신경가소성’이 있다는 점이다.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다. 새로운 학습과 자극이 주어지면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고 기능을 재배치한다.
학습, 의미 있는 관계, 규칙적인 운동, 깊은 호흡, 기도. 이런 행위들은 뇌를 다시 설계하는 도구다. 뇌는 단순히 늙는 기관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 재설계되는 기관이다.
노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치매는 상당 부분 예방과 지연이 가능하다. 냉장고 앞에서 멈춰 선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이렇게 묻는 편이 낫다.
“내 뇌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우리 뇌의 운명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아니라,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뇌는 나이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과 방향을 잃을 때 무너진다. 당신의 뇌는, 오늘 당신이 선택한 새로운 경험만큼 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