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1 박은미 기자 | 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절반 이상이 폭언과 괴롭힘 등 인권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인권침해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으며, 이는 간호 인력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대한간호협회가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여성 90.4%, 주로 30~40대)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50.8%가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은 폭언(81.0%)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69.3%)이었으며,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0%) 순이었다.
특히 79%는 환자나 보호자 등 제3자가 있는 공간에서 발생해, 간호사들이 직업적 존중 없이 공개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에서는 인권침해의 근본 원인으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지목된다. 과도한 업무 부담과 교대근무 속에 간호사 간 위계와 갈등이 심화되고, 피로 누적이 폭언·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65.3%는 휴직이나 사직을 고려했고, 43.5%는 직종 변경을 고민한 것으로 나타나 인권침해가 결국 숙련 인력 이탈로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 후 대응도 여전히 어렵다. 인권침해를 경험한 간호사 중 71.8%가 ‘무대응’을 선택했으며 그 이유로 “신고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67.2%)가 가장 많았다.
공식 절차를 통한 신고는 15.0%에 불과했고, 이 중에서도 “기관 내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이 69.0%에 달했다. 이는 현행 제도가 실질적 보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처벌 기준과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권침해 행위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신고자 보호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직장 내 ‘갑질 문화’와 수직적 관계를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선후배 간 권위적 문화와 부적절한 언행이 반복되며, 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간호사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감정노동 완화, 심리상담 지원, 리더십 교육 등 실질적인 조직문화 개선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답자들이 꼽은 최우선 개선 과제는 △인력 충원 등 근무환경 개선(69.3%), △법·제도 정비 및 처벌 강화(57.5%)였다.
간호협회는 “인력 확충 없이는 인권침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며 “인력 충원, 처벌 기준 강화, 조직문화 개선을 포함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