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는 이렇게 말했다.
「관록을 먹고 있는 자들의 잘잘못이 구분되지 않는 것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거나, 세력가의 비호가 있거나 승진과 파면이 무질서한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관직은 있으나마나 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 자주 바뀌고 교체되면 발전을 기할 수 없고 사람들은 안일을 꾀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보는 이전에 관리에 대한 심사는 주(州), 현(縣) 두 곳만 해당되었고 중앙관리에 대해서는 심사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관리에 대한 심사가 없었기 때문에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관직에만 있으면 국록을 받아먹었고, 조정의 일부 관직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능력 없는 자들이 머리 숫자만 채우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황제에게 무신(武臣)을 제외하고, 연말에 위로는 재상에서 아래로는 일반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관들에 대해 심사하도록 비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송태조 조광윤은 크게 찬성했다.
이로부터 조보는 ‘10년 재상’의 정치행보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관리의 심사과정에서 조보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체면을 봐 주지 않았으며 황실 가족과 연고가 있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재주(梓州)의 지주로 있는 풍찬(馮瓚)이라는 자가 오만방자하다는 것이 심사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는 조광의와 깊은 관계를 다지기 위해 그에게 뇌물을 갖다 바쳤다.
이를 알게 된 조보는 풍찬의 뇌물공여 사실을 낱낱이 조사해 밝힌 후, 탄핵상소문을 올리고 그를 사문도(沙門島)로 유배를 보냈다. 또 풍찬과 유사한 인물로 요서(姚恕)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조광의의 참모로 있었으며, 또 그의 입김으로 전주(澶州) 통판(通判)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의 권세를 믿고 나쁜 짓을 일삼았다.
그는 독단적으로 문서를 발부해 월권행위를 했으며, 심지어는 지주에게 “내가 바로 당신을 감독하라고 조정에서 파견한 감군(監軍)이다.” 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당시 지주는 황제의 손아래 처남 두심조(杜審肇)였는데, 그의 등살에 기가 푹 죽어 있었다.
이러한 요서의 소행을 알게 된 조보는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요서를 징벌하기 위해 조광의의 체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법에 따라 사형에 처했다. 조보는 충성스럽고 유능한 재상이었다.
한 번은 조보가 한 관직에 등용할 사람을 추천했는데 조광윤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튿날 조보가 또 다시 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자 조광윤은 버럭 화를 내며 상소를 갈기갈기 찢어 땅에 내던졌다. 조보는 땅에 엎드려 종잇조각들을 주어들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그 다음날 조각난 종잇조각들을 풀로 붙여 잘 보완한 상소를 또 올렸다.
그때서야 조광윤은 재고한 끝에 그가 추천한 사람이 괜찮다고 생각되어 조보의 의견대로 임용하기로 했다.
송나라에는 봉급을 받으나 일반적으로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 관리들이 많았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차례로 어떤 직책에 임용하게 되는데 이것을 ‘입관(入官)’이라고 했다. 한 관리가 응당 입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조보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나 조광윤은 그 사람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조보가 계속 단호히 추천하자 화가 난 조광윤은 조보를 혼자 궁 밖에 내버려둔 채 황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고집이 센 조보는 끄떡도 하지 않고 계속 궁문 밖에 서 있었다. 나중에 조광윤도 할 수 없이 그의 요구대로 그 사람을 입관시켜 주었다.
조보는 겸손하지만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부드럽다고 삼키고, 딱딱하다고 뱉는 일 없이, 부드럽다고 삼키고, 딱딱하다고 뱉는 일 없이: 柔也不茹 剛也不吐 홀아비나 과부도 업신여기지 않고 강하고 횡포한 자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재능이 있다고 여기는 자는 황제의 불허도 두려워하지 않고 허락할 때까지 계속 상소를 올렸다.
어느 때인가 조보의 집을 찾은 송태조 조광윤은 행랑 밑에 놓여 있는 병 열개를 발견하고 물었다.
「이건 무엇이오?」
이에 조보가 아뢰었다.
「오월(吳越)의 사신이 왔을 때 서신과 해물이 든 병 열개를 가져왔습니다. 서신은 서재의 책상 위에 있는데 아직 뜯어보지 못했고 이것은 모두 해산물이라고 해서 행랑에 임시로 두었지요. 아직 열어보지 못해 무슨 해산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술을 즐겨하는 조광윤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해산물이라면 맛이 좋을 텐데...」
송태조의 말을 듣자 조보는 즉시 병을 열고 함께 해산물을 맛보려 했다. 그런데 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모두 해바라기씨앗 모양의 금덩어리였다.
조보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신(臣)은 아직 서신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월의 사신이 이러한 것을 선물한 줄 몰랐습니다.」
조광윤도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제후국들이 좋은 뜻에서 보낸 것일 테니 받아두시오. 제후국들은 나라의 큰일은 모두 당신이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조광윤은 조보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월국 사신의 선물을 받아두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