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돌(Eolithic)…피지컬AI·초전도체 시대의 오래된 미래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게 널려 있으면서도 가장 간과되는 존재가 바로 ‘돌’이다. 현대 도시는 아스팔트가 대지를 덮고 시멘트와 철근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날것 그대로의 돌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도심의 인공 구조물을 한 꺼풀만 벗겨내고 교외의 산과 들로 나가면, 우리는 여전히 대지의 뼈대인 수많은 돌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한반도는 전 세계 고인돌 통계의 40%에 달하는 3만여 기가 집중된 '돌의 나라'다. 이 거대한 돌들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수천 년 전 인류의 삶과 죽음을 증언하는 엄중한 기록물이다.

 

전통적인 정령주의(Animism)는 세상 만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영험한 바위 앞에 치성을 드리며 안녕을 빌었다. 하지만 종교적 관점을 떠나 돌을 그 자체로 바라보아도 그 존재감은 경이롭다. 돌은 인간의 찰나 같은 생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견뎌왔다. 수백만 년, 혹은 수억 년 동안 기류와 바람, 구름과 비, 서리와 이슬을 몸으로 받아내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다. 만일 돌에 기록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연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돌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 하나지만, 인간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처럼 자연을 정복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받지는 않았으나, 돌은 인간보다 우월한 덕목 하나를 지녔다. 바로 거짓과 사기를 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은 오직 그 자리에서 땅과 대기가 주는 자극을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 있는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구약성서 여호수아기에는 유대인이 신의 도움으로 요단강을 건넌 증거로 강바닥에서 큰 돌 하나씩을 메고 나와 증거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돌은 불변의 상태로 보존되는 '지표(Index)'로서 기능을 한다. 이처럼 변치 않는 견고함은 인류가 돌을 신뢰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였다.

 

동시에 돌은 인류가 최초로 손에 쥔 내구성 있는 '도구(Tool)'였다. 돌칼, 돌도끼, 맷돌은 선사시대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으며, 이를 원석기(Eolithic)라 부른다. 흥미로운 지점은 2000년대 초반 영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카터 박사의 통찰이다. 그는 현대 문명의 정수인 컴퓨터를 가리켜 "원석기(Eolithic)적 의미에서의 돌"이라고 정의했다. 정교한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컴퓨터 역시 결국 실리콘(Silicon), 즉 돌에서 추출한 성분을 고도로 가공한 결과물이며, 그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도구로서의 돌'을 다루는 데 있어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감각을 지녔다. 1978년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서구 중심의 고고학 이론을 무너뜨린 결정적 증거였으며, 한반도 거주자들이 이미 수십만 년 전부터 고도의 지능적 도구를 제작했음을 입증했다. 이 손기술의 역사는 오늘날 젓가락 문화와 결합하여 미세한 감각과 두뇌 발달을 자극했다. 세계를 제패한 쇼트트랙, BTS의 정교한 퍼포먼스, 그리고 미국 의대생들이 배우러 오는 한국의 외과 수술 실력은 모두 '손에 잡히는 돌'을 완벽하게 다루어온 민족적 유전자의 발현이다.

 

이제 우리는 가상 세계를 넘어 물리적 실체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와 더불어, 저항 없는 에너지 전송을 꿈꾸는 '상온상압초전도체'라는 기적의 물질을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혁명적인 물질들 또한 결국 현대판 '원석기(Eolithic)'의 연장선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초전도체 역시 돌의 성분을 재조합하여 만들어낸 인류의 새로운 도구다. 신소재와 AI라는 강력한 주먹도끼를 손에 쥐게 된 지금, 우리에게는 중대한 윤리적 숙명이 부여된다. 기술이라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먹도끼를 휘둘러 생존의 지평을 개척했듯 이 첨단 물질들이 인류의 삶의 양식과 제도를 더욱 유익하게 변화시키도록 통제해야 한다. 초전도체와 AI가 단순한 자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의 가능성을 넓히는 공공의 도구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다. 도구는 결코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인간의 도덕적 의지를 보조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우리는 다시 손에 든 '영리하고 신비로운 돌'을 통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영토를 책임감 있게 개척해 나갈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피지컬 AI와 초전도체라는 현대적 원석기를 관리하는 핵심은, 도구의 예속에서 벗어나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실천은 기술이 결코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술의 발전 방향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공익을 향하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초전도체와 같은 혁명적 물질이 특정 자본의 전유물이 되어 격차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이를 '공공의 도구'로 정의하고 기술 혜택의 민주적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는 돌이 지닌 '거짓 없는 기록성'과 '불변의 지표'로서의 속성을 본받아야 한다. 데이터가 곧 권력이 되는 AI 시대에, 돌처럼 정직하게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는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손기술'이 단순히 정교한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생존의 지평을 개척했던 조상들의 지혜처럼 인류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첨단 도구들을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한정 짓는 절제된 태도가 필요하다.

 

기술이라는 거대한 주먹도끼를 휘두르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물려받은 독보적인 감각과 지능을 활용해 이 신비로운 돌들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영토를 책임감 있게 일구는 동력이 되도록 통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