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 유벼리 기자)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화장실 시설을 발굴하고, 8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공개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경복궁 화장실의 존재는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궁궐지 등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의 화장실은 최대 75.5칸으로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다.
특히,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와 동궁권역을 비롯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발굴된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과 씨앗이 검출됐다.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하였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되었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의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하여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다.
관계전문가(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고대 유적에서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의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12일부터 공개하여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시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