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의 세상을 밝히는 힘(15)] 청렴, 공직자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

투명성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국가법정교육진흥원 대표 하충수 박사

 

청렴은 공직자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공직자의 청렴은 단순한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 민주주의 전체의 생명선이 된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되지만, 그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반드시 신뢰라는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청렴은 바로 그 신뢰의 토대다.

 

청렴은 법과 원칙을 그저 지키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진짜 청렴은 법과 원칙만을 지키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권력자의 압력, 이익집단의 유혹, 심지어 대중 여론의 요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편법은 언제나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로 유혹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예외가 원칙의 구멍이 되고, 그 구멍은 점차 커져 결국은 무너진다.

 

투명한 행정은 결코 편하지 않다.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건, 모든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자세이기도 하다. 불편함을 피하려다 보면 진실을 감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직자는 국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대변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투명성이란 실수를 숨기지 않고, 과정을 설명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다. 결국 그 불편함이 국민의 신뢰를 만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대부분의 부패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접대, 작은 편의 제공, 친분 있는 이에게 건넨 배려. 이런 작은 일들이 쌓여 어느새 거대한 비리로 이어진다. 청렴한 공직자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관계를 공적 영역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친구도, 가족도, 은인도 업무 안에서는 시민일 뿐이다.

 

청렴은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다. 5분 먼저 도착하기, 공금 1원 아끼기, 보고서 한 줄도 정확히 쓰기. 이런 작고 평범한 실천이 모여 진짜 청렴을 만든다. 큰 비리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작은 부정직함을 묵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정직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짜 공직자의 모습이다.

 

아무리 개인이 청렴하려 해도 조직이 그렇지 않다면 한계에 부딪힌다. 부정을 봐도 침묵하는 문화, 내부 고발자를 외면하는 분위기, 잘못을 감추려는 관행이 남아 있다면 청렴은 공허한 이상일 뿐이다. 청렴한 조직은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고 고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것이 바로 신뢰받는 조직의 힘이다.

 

청렴은 공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생존의 조건이다. 청렴을 잃은 공직사회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은 정부는 권위를 잃는다. 그리고 권위를 잃은 국가는 언젠가 무너진다. 공직자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받는 급여는 국민의 세금이고,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는 국민이 맡긴 자리다. 청렴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것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도둑이다.

 

청렴은 특별한 날, 중요한 순간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오늘 내가 결재하는 문서, 지금 응대하는 민원인, 방금 한 판단 하나하나에 청렴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국민을 위한 공직자의 첫걸음이다.

 

최근 전직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금품 수수 의혹이 공직자의 청렴이라는 화두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명품 손가방이나 고가의 시계 등이 전달된 정황이 있으며, 이른바 ‘금거북이’ ‘클러치백’ 등이 수수 의혹 대상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청탁금지법상 배우자에 대한 금품 제공 한도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의혹이 단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공직 전체의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