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풍년(豊年)들 때 흉년(凶年) 대비
역사에는 이른 바 포퓰리즘(populism)에 의해 늘 듣기 좋은 말이나 행동으로 대중의 마음에 영합하여 칭송을 받고 싶어 하는 제왕들이 있다. 그들은 남이 치켜세워주고 앞뒤로 옹위되어 떠받들리기를 좋아한다. 조금이라도 공적이 있으면 자화자찬하고 성인(聖人)이라도 된 양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역사는 대개 후세 사람이 쓰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덕행이 아니다. 스스로 평범치 않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이에 비석은 무너지게 되고 칭송의 말은 사라지게 된다.
송태조 조광윤은 풍년이 들면 곧 이러한 조서를 내렸다.
「풍년을 구가하는 노래는 찬양의 소리로 전파될 수 있다. “흉년에 대비하여 가능한 한 많이 비축해야 한다.”는 훈시는 역사에 기록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근래 날씨가 좋아 백성이 살만하게 되었으나, 전답에 탄식 소리가 사라진 반면 밭두렁에는 곡식 이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역사서를 깊이 탐독한 조광윤은 항상 역사를 거울삼아 풍년이 들었을 때도 백성들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리기보다는 곡식을 비축해 닥쳐올 흉년에 대비하고 식량을 낭비하지 말며 수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안할 때 미리 위험할 때의 일을 생각하고 경계하는 이러한 생각은 바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조광윤이 황제로 재위하고 있는 동안 대체로 날씨가 좋아 농사가 잘될 때가 많았지만 자연재해의 피해도 많이 있었다. 나라가 크다보니 지역적으로 수재와 가뭄 같은 재해는 늘 발생하기 일쑤였고 메뚜기며 쥐 피해를 많이 당했다.
자연재해는 원인도 모르는 사이에 수시로 닥쳐왔고 인위적으로는 방지할 대책이 없었다. 천재(天災)는 전장에서 적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웠다. 농업경제를 주체로 하는 봉건국가에서 자연재해는 전쟁이 초래하는 파괴만큼이나 피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