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인구가 70억이 넘었지만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고, 산업기술은 급속히 전자화(電子化)되고 있다. 그만큼, 세상 보는 눈도 많아지고, 빨라지고, 다각화(多角化)되어 더 이상 틀에 박힌 견해나 시각은 있을 수 없고 100% 정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떤 사안 특히 정책에 대해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왜냐 하면, 각기 다른 경험, 지식, 이익, 환경에 따라 다른 잣대와 색안경을 쓰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라의 앞날을 위해 어떤 비판이라도 감수하고 한마디 쓴 소리를 하고자 한다. 요즘, 한국은행의 통화(通貨)정책이 정치이슈화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주요 정당에서 표를 의식한 통화의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를 주장했고, 급기야는 이에 정부도 동조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모든 사안이나 정책에는 일리(一理)가 있고, 명암(明暗)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명분을 보면 가관(可觀)이다.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돈을 마구 찍어내서, 선박업을 비롯한 주요 부문의 기업구조조정을 하는데 쓰겠다는 얘기다.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기업부문이 국내기업간 과도한 헐값경쟁
토마스 스탠리라는 분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백만장자가 되는 비결을 설명했다. ➀1위(자기관리) 자신을 이기기 위해 철저히 자기를 관리한다 ➁2위(정직) 정직이 생명이 되어야 신뢰자산을 만든다 ➂3위(인간관계) 인맥자산은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만들 수 있다 ➃4위(건강가정) 내조와 외조를 서로 잘하여야 정서적 안정을 갖는다 ➄5위(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여 성과를 낸다. 이렇게 보면 백만장자 비결은 모두 그 사람의 인간성과 관계되는 것들이다. 이스라엘 어머니와 한국의 어머니 간에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질문이 다르다고 한다. 이스라엘 어머니는 논리와 창의를 중시하여, 오늘 뭘 질문했니? 라며, 자녀가 질문 안했다고 하면, 네가 사전준비나 수업시간을 소홀히 했구나 !며 자녀에게 책임을 묻는다. 한국 어머니는 암기와 지식을 중시하여, 오늘 뭘 배웠니? 하며, 자녀가 배운 것이 없다고 하면,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구나 !며 선생님에게 자녀 공부 못한 책임을 넘긴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사고하는 지혜를 중시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암기하는 지식만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대
오~ 세호! 내 친구 “오세호”를 생각할 때면, 늘 아련한 안개 속에 바람결 나부끼듯 천진스레 미소를 머금고 날렵하게 몸동작을 하는 “쎈돌이”가 떠오른다. 세호와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함께 죽을 둥 살 둥 유도(柔道)를 열심히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리 짱짱하고 날쌔던 세호에게 30대중반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처럼 “하반신마비”가 찾아왔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리 고통스러울 때 죽음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천길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어도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하늘만 올려다보며 용감하게 “해피랜드(happyland)” 정복에 도전했다. 많은 어려움들이 그를 가로막았지만 결코 이에 굴하지 않고, 요즘 북쪽의 누가 좋아하는 장거리미사일처럼 날쌔게 날아가 “해피랜드”에 안착(安着)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고난이 없었다면 “해피랜드”에 올 수 없었다고 감사해 하면서, 그는 비슷한 고난으로 힘들어 하는 장애인들은 물론 외국인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방문해 위로하며 용기를 불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 禮가 없어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부부 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친구 간에, 직장과 사회관계에서 예가 과거와 달리 많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禮란 무엇인가? 예는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사를 하면서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윗사람이 말할 때 경청하고, 아랫사람에게 경어를 쓰고, 선물을 받으면 답례하는 모든 것들이 예의 징표이다. 그래서 예가 유지되면 사회질서로 발전되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좋게 만들고 좋은 사회를 만든다.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관행과 교육을 통해서 자기를 낮추면서 상대를 높이고, 기히 형성된 형식과 예법을 가급적 지키는 것이 그 방법이다. 형식은 실질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형식이 중요하다. 몸에 익혀진 예의에 관한 형식은 사회적으로 질서를 만든다.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형식을 익히면 마음이 변화되어 예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준이 더 높아지면 고운 마음으로까지 발전되면서 바로 좋은 행동이 나오게 된다. 왜 예가 없어져 가고 있는가? 예를 뒷받침하는 인성교육이 빈약한데다 붙잡아 주는 형식
이곳 폴란드는 어제까지만 해도 때아닌 눈발이 흩날리고 스산하게 비까지 내렸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죽여주게 화창한 날씨다. 강의 없는 날이면 늘 “방콕”인 내게 아들처럼 잘 하는 리차드가 크라쿠프에서 가까운 곳에 <제스와비체(Zesławice)>라는 멋진 호수가 있으니 싱그러운 햇볕 좀 쐬러 가잔다. ▲ 폴란드 제스와비체(Zesławice)호수를 알리는 입간판 아이구, 이게 웬 떡이야? 나는 모처럼 야외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생기(生氣)가 돌면서 애들처럼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호수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는 자동차로 크라쿠프에서 북쪽으로 10km정도 신나게 달려서 30분만에 제스와비체호수에 도착해 보니, 사실은 인공으로 만든 큰 “저수지”였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 저수지는 놀랍게도 700년쯤 전에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그 이름은 폴란드애국자 지스와프(Zysław)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무튼,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상큼한 봄바람, 싸하면서도 향긋한 봄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는
폴란드 크라쿠프 소재 야기엘로니아대학의 유일한 한국인교수이며, 인터넷종합일간지 <시사1> 논설위원 조병세박사가 최근 소용돌이치고 있는 북한정세와 관련, 지난 3월 10일 연구실에서 트르밤텔레비전(Trwam TV)과 인터뷰를 가졌다. 폴란드는 오래 전부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휴전협정을 맺을 때, 당시 공산국 폴란드는 유엔중립국감독위원회(NNSC)의 4개 회원국(스위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중 하나로, 지금까지 계속 매 분기마다 한번씩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또한, 폴란드는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있는 점이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매우 흡사하여, 어느 나라보다도 남북한정세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13년 10월, 폴란드의 코모로프스키(Komorowski) 대통령이 방한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흔치 않은 “국방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양국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http://tv-trwam.pl/film/informacje-dnia-10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판단력과 분별력이다. 최근에 교수들의 성범죄 사건,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회항사건,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등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낮은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일탈행위 대부분은 판단력과 분별력이 부족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판단력과 분별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인지능력과 사고방식이 좋아야 높아진다. 認知能力은 그 사람의 정신과 사고의 레벨에 의해 좌우된다. 精神은 ‘결정하는 나’로서 신체까지 주관하는 전체의 주관자이다. 좌뇌는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며 지능지수(IQ)로 측정되고, 우뇌는 이해, 평가, 감성을 담당하며 감성지수(EQ)로 측정된다. 思考는 ‘생각하는 나’이다. 보통 마음이라고 지칭되며 自性이라고도 한다. 정신과 사고의 수준이 높아지면 인지능력이 탁월하게 높아진다. 반대로 정신과 사고의 수준이 낮으면 사람이 냉정해지며 인지능력도 떨어진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적 사고방식으로 인지한다.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인지능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 방법으로는 정신수준과 사고수준을 높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은 누구나 바르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부모님과 학교에서 어릴 적부터 배우는 것이 바르게 사는 방법이다.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과 질서라는 기준을 지키고, 또 기준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마음속에서 때때로 법과 질서를 위반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도 의지로 참는다. 둘째는 마음 자체를 바른 마음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보가 바른 생각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법과 질서를 위반한다는 생각 자체가 안 일어난다. 양심에 의해 마음 자체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바르게 대처하기 때문에 법과 질서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항상 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바른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마음이 부족하다. 왜 바른 마음을 갖지 못하는가? 마음속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좋게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랑을 쉽게 실천할 수 있다. 위하는 마음이 부족하면 사랑도 부족하다. 바른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음은 사랑의 결실이다. 사랑을 실천했을 때
우리 모두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살아간다. 부부 간의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형제 간의 관계, 동문관계, 직장관계, 씨족관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관계망 속에서 산다. 이 망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투입과 산출이 있고 결과물도 만들어 낸다. 그 결과물이 나에게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으면 최고의 성과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좋으나 상대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고, 상대에게만 좋고 나에게는 안 좋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랑외면죄는 상대가 나에게 관심과 사랑, 정성을 주려고 하는데 내가 무시하거나 필요 없다고 외면할 때 짓게 된다. 주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거나 모른 체하는 것도 사랑외면죄다. 받아야 할 사람이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많이 일어난다. 사랑외면죄는 사랑을 받을 줄 모르기 때문에 짓게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중심적으로 대인관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교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방법만 생소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방법에도 익숙하지 않다. 상대는 나름대로 사랑을 주었는데도 받은 바 없다거나 적게 받았다고 오해하는 경
삭막해지는 사람들의 마음, 무엇으로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사랑은 무쇠도 녹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집착의 사랑, 베품의 사랑, 나눔의 사랑이다. 집착의 사랑은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여 내 생각대로 상대를 끌고 가는 사랑이다. 상대를 위한다는 기준이 상대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나를 위한 것이다. 상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에, 엄격하게 말하면 사랑이 아니고 버려야 할 집착이다. 베품의 사랑은 내가 갖고 있는 지위나 소유한 재물을 베풀어 주는 사랑이다. 내가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기에 그 위치에서 약간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권위적인 마음이 들어 있다. 베풀어주는 사랑은 언젠가는 그 생각이나 행동이 중단된다. 몇 번 베풀었으니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면 슬며시 사라지는 일시적인 사랑이다. 나눔의 사랑은 지위나 물질을 함께 나눠쓰자는 것이다. 갖고 있는 지위나 물질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잠시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소유의 생각이다. 평등사상이 들어 있으며, 상대를 존중하면서 정성을
한세상 살아가노라면 일도 많고 탈도 많다. 사람마다 근기와 경험과 형편이 다르니 대처방법도 다르다. 지난 연말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반도 여행 중 뜻밖에 관광버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 유럽사람들이 놀랄만한 참을성을 가지고 “아름다운 기다림을 통해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지혜로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사람들이라면 이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유럽은 대개 가톨릭나라여서 12월초부터 온 시가지는 “크리스마스-트리, 마켓, 파티와 페스티벌”로 축제분위기가 한달 이상 계속된다. 크리스마스기간에는 강의도 없어 방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뭣해 나는 “이한치한(以寒治寒)”으로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엄동설한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북유럽의 발틱(Baltic) 3국 리투아니아(Lithuania), 라트비아(Latvia), 에스토니아(Estonia)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핀란드(Finland)를 여행했다. 나는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를 떠나 발틱 3국의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핀란드 헬싱키까지 장장 왕복 3,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논어에서는 사랑의 방법으로 인(仁)을 실천하여 자기를 완성하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사랑이라면 배려의 사랑인 인(仁)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가 규모는 크게 성장했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배려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배려는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 베푼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베풀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베풀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불평등한 관계도 있다. 그래서 배려의 사랑은 사랑 나눔을 크게 확산시키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다 사랑이 아니다. 참된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치중하는 형식적인 사랑, 머리로만 하는 계산적인 사랑, 지혜가 없는 맹목적인 사랑, 자신의 욕구만 중시하는 집착적인 사랑, 이런 것들은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사랑이기에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모르고 하는 유형1의 가짜사랑이다. 그러면 무엇이 제대로 된 사랑인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위하는 사랑이 사랑을 알고 하는 참된사랑이다. 왜 우리는 참된사랑을 알아야 하는가? 왜 사랑을 구별해서 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