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인 강선영(91) 여사가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1925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난 후 고인은 한국무용의 살아 있는 역사로 통했다.
1950~60년대에는 '법열', '초혼', '열두무녀도', '원효대사' '농부와 선녀' '수선화' 등 전통 춤을 넘어 창작춤을 이끌었다.
明嘉 강선영 선생은 경기 출생으로 열다섯살 때 한성준 고전음악연구소에 정식으로 입소하여 무용공부를 시작했다.
1960년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하였고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 무용과 강사로 후배 양성에 전념했다.
1965년 5월 제 12회 영화제에 무용극 초혼을 출품하여 문화영화 작품상을 수상했다.
1973년엔 국민훈장 목련장과 1976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연예부문(무용) 및 서울시 문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1985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에는 한국 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1992년부터 1996년에는 제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별세 하기전 까지 태평무 전수관 이사장 겸 경기도민회 부회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3세부터 한국 춤의 전설 한성준(1874∼1941)에게 배웠다. 그에게 춤을 배운 유일한 생존 무용수였다.
그는 특히 한국춤을 세계 무대에 널린 알린 주인공으로 평가 받는다. 1950년대 강선영 고전무용연구소를 세운 고인은 1960년 5월 파리에서 열린 '제5회 국제민속예술제'서부터 본격적인 해외 공연을 시작했다. 무용가뿐 아니라 이생강 등 국악연주자, 안나영 등 영화배우 수십명이 참가했다. 대규모로 국제행사에서 한국을 알린 건 그때가 처음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강선영에게 해외공연의 러브콜이 잇따랐다. 2006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한국 전통무용을 처음 선보이는 등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획을 그었다. 링컨센터 공연에 대한 평이 '타임'에 실리기도 했다. 170여개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했다. 한국 무용가 중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한 기록이다.
공연 이력은 1988년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88 서울올립픽홍보사절단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히 88세 때인 2013년 강선영춤보존회 주최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강선영 춤인생 80년'을 기념하는 무대의 피날레서 '태평무' 무대에 등장하는 등 노년까지 춤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항상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끝까지 프로다운 모습도 잃지 않았다.
장례는 한국무용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무용 의상디자이너인 딸 이남복 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