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이 멈추지 않으면서 원유판매 수입에 의지해 온 산유국들이 재정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산유국의 국민들도 경제적인 측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정치불안도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원유 수입국들은 저유가가 환영할 일이지만 산유국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각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면서 증시가 하락하고 있다.
이미 원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남미 베네수엘라는, 지난 1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경제 비상조치를 가동중이고 세금 인상 및 통화거래 통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는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좌파정권 존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일로지오 델피노 석유부 장관은 OPEC 및 비 OPEC 산유국의 2월 긴급 회동을 요청했다.
델피노 장관은 원유의 균형 가격으로 '배럴당 60달러'를 제시했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의 가격은 배럴당 29달러 수준이다.
델피노 석유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라디오 방송 코멘트를 통해 "특별 산유국 회동을 통해 다양한 원유 생산국 장관들과 논의하고자 한다"면서, "OPEC 회원국이 아닌 산유국들도 초대하길 원한다.
유가가 균형가보다 지나치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모든 국가들이 투자 삭감과 인력 감축을 단행해야한다"고 말했다.
2014년 말∼2015년 초 무렵 국제유가 하락 추세가 본격화할 때만 해도 저유가를 한국 경제에 기회로 생각되었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선 유가가 내리면 공장 가동 등에 필요한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유리하다.
또 이로 인해 물건값이 떨어지고, 휘발유·경유 등 가격도 하락하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도 커지는 만큼 기업과 가계가 소비를 늘려 경기가 좋아지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근거로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작년 초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49달러까지 하락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20달러대까지 급락하면서 저유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저유가가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하면서 우리나라도 수출 측면에서 악영향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의 58%가 신흥국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 국가로의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등지의 산유국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하게 됐고 이는 조선·건설·플랜트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력 수출 분야인 조선·건설·플랜트의 수주 감소를 초래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2월 초 기준으로 작년 해외건설 수주액은 약 409억5천700만 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595억6천만 달러에 비해 31.3%나 급감했다.
이 가운데 해외건설의 '텃밭'으로 불리던 중동 지역 수주액은 147억2천600만 달러로 무려 52%나 줄었다.
이는 2006년 이후 중동지역 수주 금액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된 시추업체들이 줄줄이 발주 및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해운업계는 일감이 줄어 선박을 거의 발주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조선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속속 국제유가 전망을 하향조정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기존 원유와 경합하는 셰일가스 생산 기술의 발달로 초경질원유(콘덴세이트) 생산량이 근래 늘어나는 와중에 유가가 배럴당 1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는 형국이다.
세계 경제에 뚜렷한 개선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런 예측에 힘을 싣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아직 큰 틀에서 보면 유가 하락은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저유가 효과가 예전보다 감소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효과를 소비와 투자로 연결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며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플러스가 될 여지가 남아있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하향조정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반영됐지만 특히 유가 등 하락으로 신흥국 경제와 세계 금융시장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수요시장이 워낙 안 좋아진 만큼 배럴당 30달러 내외에서 움직이는 저유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측면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저유가가 구매력을 높여서 소비 늘리는 요인이 있긴 하지만 그 효과가 작년만큼 크지는 않을 것 같다.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 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어 "신흥국 수요 위축으로 수출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 저유가는 신흥국에 더욱 큰 악재로 작용하는 만큼 한국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낮은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세계 금융·외환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계했다.
따라서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선 수출산업의 제품 경쟁력을 높여 수 있도록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하며 유가 하락으로 생산 비용이 줄어든 만큼 제품 경쟁력 향상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성패는 결국 제품 경쟁력을 키우는 일에 달렸으며 연구개발 투자 등을 늘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저유가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들의 종합적인 의견은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전년대비 수출 단가 하락 폭은 점차 축소되기 때문에 수출물량을 계속 늘릴 수만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우리 수출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라는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