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가는 프랑스 파리여행은 출발 이틀 전, 갑작스럽게 계획되었다.
파리 테러로 인해 많이들 파리를 안 가서인지 파리행 항공권이 특가로 반 가격에 뜬 것이다.
평소 <꽃보다 할배>를 보며 ‘아빠도 유럽에 가면 참 좋아하실 텐데’ 생각했고 마침 아빠기 일을 쉬고 계셔서 이번이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았다.
나의 겨울휴가는 아빠와 함께 가는 10일의 파리여행이다! 그리고 10분 만에 바로 항공권을 질러 버렸다.
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아빠의 첫 질문.
“그런데 우리 정말 가는 거니?”
“아빠, 이틀 뒤에 우리는 파리에 있을 거예요.”
그러자 아빠는 기대가 가득 찬 미소를 머금고 꿈 같다고 이야기했다.
오래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외롭게 지내던 아빠는 늘 책과 음악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는 듯 보였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아빠에게 파리는 더없이 어울리는 도시였기에 나도 이번 여행이 기대가 되었다.
공항에서 한 컷, 기내에서 한 컷.
아빠의 첫 유럽여행에 많은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어 초반부터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비행기가 뜨자 창가로 보이는 구름들, 저 아래에 보이는 도시의 작은 건물들…
그 위로 13시간 날아가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프랑스에서의 크리스마스라니! 들뜬 내 기대와는 달리 파리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도 조용했다.
민박집에 도착해 물어보니 유럽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낸다고 한다.
조명 가득한 거리와 각종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생각했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짐을 놓자마자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에펠탑으로 향했다.
밤에 보는 에펠탑은 마치 도시의 빛처럼 파리의 허공을 수놓는 듯 했다.
특히 샤이오궁에서 바라본 에펠탑은 엽서 속 이미지처럼 아름다웠다.
10일 동안 파리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파리 여행지 다섯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행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나의 BEST 장소는 아빠와 함께 가서 즐거웠던 곳으로 선정했다.
1. 서민적인 분위기의 몽마르트 언덕
몽마르트는 파리의 북쪽지역에 위치해 있다. 중심부가 아니기에 고전적인 건물들로 가득한 파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파리는 야경도 아름답지만 한낮에 몽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또한 아름다웠다.
몽마르트 언덕은 일요일마다 열리는 엔틱 벼룩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누군가 손 편지를 쓴 오래된 엽서, 동전, 성냥갑, 밀랍인형과 가죽공예품까지 엔틱 제품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여러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몽마르트는 파리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었다.
2. 음악회가 있는 마들렌 성당
콩코르드 광장과 오벨리스크 맞은 편에는 마들렌 성당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을 보았다고 마들렌 성당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노트르담 성당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는 마들렌 성당 내부에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과 함께 있는 조각상이 있는데 그 웅장함과 정교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의 장례식이 거행된 장소답게 마들렌 성당에서는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
우리가 갔던 날은 새해가 오는 것을 기념하며 저녁에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회가 있었다.
실황으로 듣기 어려운 베토벤 교향곡을 역사 깊은 성당에서 듣는다는 사실만으로 오감이 만족할만한 연주회였다.
파리 여행을 간다면 마들렌 성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한번쯤 참석해 볼 것을 추천한다. (가격은 성인 40유로, 학생 30유로)
3. 소소한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 마레지구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에만 프랑스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레지구의 작은 박물관에서도 프랑스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파리 역사 박물관인 카르나발레. 원래 프랑스 한 가문의 저택이었던 곳을 파리 시 의회가 구입해 박물관으로 개장했다고 한다.
옛 파리의 지도, 중세 시대 귀족들의 유품과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위대한 작가 빅토르위고의 집도 이 마레지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빅토르위고의 사진과 그림들, 그의 물건들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살펴볼 수 있었다.
마레지구의 박물관들을 보고 있자니 김춘수 시인의 ‘부재’라는 시가 떠올랐다.
‘할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 꿈결같이 사람들은 / 살다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라는 도시에서 살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과 물건, 건물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우리에게 수많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다가 죽었노라고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대형 박물관보다 마레지구의 조용히 사색하며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들이 개인적으로는 더 기억에 남았다.
4. 신비의 수도원, 몽생미쉘
이번에는 파리에서 4시간 가량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몽생미쉘 수도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찾아가기에는 교통편이 복잡해 현지 한인 여행사를 통해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몽생미쉘은 공중에 떠 있는 성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밤에 보는 모습은 더욱 그랬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러 설명보다 한 장의 사진이 그 감동을 더 깊이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몽생미쉘은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부패한 성직자들과 귀족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원임에도 어떤 방은 귀족들의 파티에 활용되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 특권 계층의 부패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도 했다.
몽생미쉘을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작은 카페들 중 한 곳에 들어가 아빠와 뱅쇼를 한 잔 마셨다.
뱅쇼는 포도주를 계피, 과일 등과 함께 끓인 따뜻한 와인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먼 거리지만 당일치기 몽생미쉘 여행을 강력 추천한다.
5. 샹젤리제 거리의 새해 퍼레이드
아빠와 내가 여행을 간 시기는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신정이 있는 기간이었다.
덕분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리는 새해 퍼레이드를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관악대가 행진하며 연주하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과 파리 시민들이 샹젤리제 거리로 나왔다.
관악대에 이어 중국인, 바이킹족 등 다민족의 사람들이 준비한 각 나라의 전통 퍼레이드 역시 매우 이색적이었다.
취재 열기도 매우 뜨거웠다. 역시 파리의 새해 축제는 다르다는 말이 나올 만큼 스케일도 크고 다양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유람선을 타고 파리를 돌아보며 ‘혹시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아마도 아빠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저 유명한 여행지 중 하나였던 프랑스 파리는 그렇게 나에게 아빠와 함께 한 잊지 못할 첫 여행지로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다.
(글. 사진·조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