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21>

제3절 농민을 위한 각종 정책 개발 (10)

태조 조광윤이 실시한 또 하나의 구제방법은 ‘견면(蠲免)’이라고 하여 재해지역의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중국은 예부터 충해(蟲害)를 입으면 농신(農神)에게 큰 불로 농작물의 해충을 태워달라고 기도했다. 962년(태조3)에 하북(河北), 섬서(陝西), 경동(京東) 등 여러 주에 메뚜기 떼로 인한 극심한 충해가 발생했다. 메뚜기 떼를 없애는 방법이 없던 시대에 조광윤도 농신에게 불로 메뚜기 떼를 태워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광윤은 농신에게 기도하는 외에 피해지역의 세금을 면제해줌으로써 충해에 의한 어려움을 완화시켜주었다.

 

962년(태조3) 봄에 회남(淮南) 각지에 대규모의 기근이 발생하여 농민들은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상황은 호부랑중(戶部郞中) 심륜(沈倫)에 의해 보고되었다. 당시 그는 오월(吳越)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변경(汴京)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주(揚州)와 사주(泗州)에서 전답이 황폐되고 농민들이 기근에 허덕이는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그는 현지의 관리를 찾아가 책임을 물었다. 지방관리는 이 사실을 이미 조정에 보고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정도 평정한 지역에 대해 면세정책을 실시하다 보니 국고에 비축한 식량이 많지 않아 근심걱정에 쌓여 있었다.
심륜이 황제의 측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 관리는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군(軍)에서 비축하고 있는 군량미(軍糧米) 백만 석을 농민들에게 대출해 주자고 건의했다. 군량미를 방출하면 백성을 구할 수 있고 또 햇곡식이 나올 때 갚으면 되기 때문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일거양득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량의 사용은 국가의 중대사이기 때문에 지방관리로서는 감히 조정에 제안을 할 수 없는지라 심륜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대 안건에 대해 조정대신인 심륜도 마음대로 처리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태도를 표명하지 못했다. 그는 다급히 경성(京城)으로 돌아가 이 급박한 상황을 조광윤에게 보고하고 군량미로 이재민을 구제해 줄 것을 건의했다. 심륜이 아무리 조광윤의 신임을 얻고 있다할지라도 회남군부(淮南軍府)의 군량을 전용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건국한 지 2년 밖에 안 되고 또 두 이씨 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 상황 하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남은 후주가 남당으로부터 탈취한 땅이고, 국력이 비교적 강한 남당은 늘 국토를 빼앗긴 원수를 갚으려고 호시탐탐하고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요소가 남아있었다. 그러므로 일단 군량을 전용(轉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위험이 생길 소지가 있었다. 송태조 조광윤도 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광윤은 여러 신하들로부터 의견을 들었는데 결과는 온통 반대의 목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