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의 일상이 한폭의 그림으로 표현돼 삶의 풍속이나 격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4월 20일부터 8월 2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에서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_일상, 꿈 그리고 풍류’전을 개최하고 있다.
인물을 주제로 하는 풍속인물화는 그림을 넘어 옛 시대상을 전하는 기록임에 분명하다.
국보급 문화재들이 골동품 상점에서 헐값에 거래되고 있었던 일제강점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20대 초반에 십만석꾼이 된 간송 전형필 선생은 우리민족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것을 자신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와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조상이 남긴 문화재뿐이기 때문이다. 간송선생은 그렇게 수집한 문화재들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 보화각(葆華閣)을 1938년에 설립하였고, 지금은 간송미술관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성북동에서 1년에 두번, 각각 2주씩만 전시를 해오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소장품들을 전시하면서 우리는 더 자주, 더 오래 간송의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인물을 주제로 하는 풍속인물화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주제이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풍속인물화들을 ‘일상’, ‘꿈’, ‘풍류’ 3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섹션별로 전시하여 감상의 깊이와 재미를 더하였다. 평민들의 노동과 휴식, 문인의 공부와 풍류의 장면 등, 선조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속세를 벗어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선과 고승들은 옛 사람들의 이상과 동경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풍속인물화는 선조들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전해주는 실체적인 역사 기록이자, 그들이 꿈꾸던 삶의 지향까지 엿볼 수 있는 가늠자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안견의 제자 석경(石敬, 1440~?)으로부터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에 이르는 조선 500년 역사 속에 펼쳐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회화양식의 발전성쇠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김홍도의 <마상청앵>, 김득신의 <야묘도추>,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 풍속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명작들이 대거 출품되어, 조선후기 풍속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와 구범석 작가의 미디어 작업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고미술의 현대적인 재현 관점에서 눈 여겨 볼만 하다.
이이남 작가의 <꿈 속의 선비>는 단원 김홍도의 명화 「마상청앵도」」의 말을 타고 가다 봄의 소리를 듣게 되는 원작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원작의 아름다움을 동화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구범석 작가의 <간송아트컬렉션>은 조선시대 풍속인물화 걸작 10점을 선별하여 초고해상도 화질로 구현하여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세밀한 질감과 색감으로 고미술의 색다른 영상미를 감상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전시는 지금은 잊혀진 선조들의 삶과 꿈을 체험하는 시간 여행이자, 과거를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역사 기행이다. 지금 우리와 같고 다른 점을 보면서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숨 돌릴 틈 없이 쫓기며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에게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푸근한 휴식과 격조 있고 넉넉한 풍류의 멋을 유감없이 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2014년 DDP 개관과 동시에 열린 간송문화전 1, 2부 전시는 ‘간송 전형필’과 ‘보화각’ 이라는 주제로 각각 꾸며졌고, 소장품들중 『훈민정음』,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촉잔도권』등 주요 명품들이 전시되었다. 3부 ‘진경산수화’ 전시에는 우리 강산 고유의 아름다움을 사생한 진경시대 산수화들이 주를 이루었고, 4부 전시는 ‘매.난.국.죽’을 주제로 군자의 성품과 몸가짐을 연상케 하는 사군자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지난 3월에 마친 5부 전시는 우리 선조들이 자연과 우주만물의 섭리를 숙고하며 그려낸 동식물 그림인 ‘화훼영모’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대표적 전시작품: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 쌍검대무(雙劍對舞: 쌍검으로 마주보고 춤추다
신윤복(申潤福), 지본채색, 28.2×35.6cm
세력 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과 가무(歌舞)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이다. 악공과 기생의 수효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 규모는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 대감과 자제와 부하 관리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이다.
혹시 신윤복을 키워 준 어느 풍류 재상집에서의 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화면 구성에 있어서 일체의 배경을 거부하고 검무하는 광경만 전면에 가득 채운 대담성을 보였으나 주제 표현에 조금도 군색함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는 인물을 배치하는 것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시각의 초점이 되는 검무기생들은 의상에서 청홍(靑紅)의 강렬한 대조를 보이면서 화면을 압도하는데 주인을 비롯한 악공들이 이를 중심으로 둘러앉음으로써 화면의 비중은 평형을 이룬다. 그런데 검무기의 날렵한 동작에서 오는 율동감은 관객들의 도취된 몸짓과 악공들의 신바람 나는 연주에 혼연일치를 보여 아연 활기를 띤다.
이렇게 놀이에 참석한 인물들의 심리를 꿰뚫어 순간적인 동작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담는 것은 아무리 화가의 예리한 안목이라 하더라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신윤복이 이런 세계에 얼마나 익숙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인물들이 하나같이 극도로 세련된 차림을 보이는 것도 신윤복의 주변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다.
▲ 단오풍정(端午風情: 단오날의 풍속 정경)
신윤복(申潤福), 지본채색, 28.2×35.6cm
음력 5월 5일 단오날, 그네타기 놀이를 나온 한 떼의 여인네들이 시냇가에 그네를 매고 냇물에 몸을 씻으며 즐기고 있다. 그넷줄을 드리울만한 거목이 있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이라면 당시의 서울에서야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퍽 깊은 계곡이어서 인적이 끊어진 후미진 곳이었기에 여인네들이 마음 놓고 의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냇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에는 산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위틈에 숨어든 동자승 둘이서 이 기막힌 풍경에 희희낙락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혜원은 짐짓 화면의 초점을 딴 곳으로 옮기려고 그네 뛰는 여인에게 화려한 의상을 입히고 머리 손질하는 여인에게는 엄청나게 큰 다리머리를 모두 풀어놓게 한 모양이다. 다홍치마에 반회장 노랑 저고리만으로도 지극히 선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백설 같은 속바지가 반 넘어 내 보이는 것은 반라의 여인들에게서보다 훨씬 더 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계집종인 듯한 여인이 유방을 드러내 놓은 채로 옷보따리를 이고 오는 것으로써 화면은 상하의 연결이 이루어져서 혼연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 미인도(美人圖)
신윤복(申潤福), 견본채색, 114.0×45.5cm
혜원 신윤복은 인체 묘사에 있어서 거의 명주실이나 모시 및 삼실과 같이 가늘되 철사와 같이 탄력 있는 세금선(細金線)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풍만한 여체의 요염한 자태나 풍류자제들의 맵씨 있고 단아한 면모를 남김없이 표현해 내었다.
그래서 한양 상류 사회의 세련된 풍류생활상을 격조 높게 묘사해 낼 수 있었는데 이 〈미인도〉도 바로 한양 풍류생활을 주도하던 어떤 아리따운 여인의 초상화이다. 당시 사회제도상 여염집 규수는 외간 남자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필시 풍류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기생(妓生)이었을 것이다.
가체(加髢)를 사용한 듯 탐스런 얹은머리에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기장이 극도로 짧아지고 소매통이 팔뚝에 붙을 만큼 좁아진 저고리를 입고 속에 무지개 치마를 받쳐 입어 열두 폭 큰 치마가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차림새는 여체의 관능미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자태인데 쪽빛 큰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낸 외씨같이 하이얀 버선발과 왼쪽 겨드랑이 근처에서 흘러내린 두 가닥 주홍색 허리띠끈은 일부러 고를 매지 않고 풀어헤친 진자주 옷고름과 함께 대장부를 뇌쇄시키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저고리깃과 겨드랑이는 옷고름과 같은 진자주 빛으로 회장(回裝)을 대고 끝동은 치마와 같은 쪽빛으로 회장을 대어 삼회장(三回裝)으로 멋을 부린 것도 도시적인 세련된 옷차림이라 하겠다. 두 손으로 묵직한 마노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여린듯 앳된 둥근 얼굴에 열망을 가득 담은 채 물오른 앵두처럼 터질 듯 붉게 부푼 입술이 말할 듯 아니하며 맑고 그윽한 눈빛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분명히 혜원이 이 여인의 내밀한 속마음까지 세세히 읽어 내어 그것을 그림으로 표출해 내었을 때 가능한 표현이니 초상화를 전신(傳神)이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혜원은 이런 제화시(題畵詩)를 곁들이고 있다.
“화가(畵家)의 가슴속에 만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萬物)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