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정해진 연령보다 앞당겨 받는 이들이 사상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다. 제도 시행 3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연금을 조기에 받으면 최대 30%의 감액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불이익보다 당장의 생계가 더 급하다는 방증이다.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우리사회 노후 안전망의 구조적 균열이다.
조기수령 급증의 근본 원인은 명확하다. 은퇴 시기는 빨라지는데 연금 수령 시점은 계속 늦춰지면서 ‘소득 크레바스(공백기)’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중·후반에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62세, 63세, 더 나아가 65세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버텨야 하는 현실은 혹독하다. “지금 돈이 없다”는 절박함은 모든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조기수령자 급증은 곧 ‘노후 빈곤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겨 받은 만큼 평생 연금이 깎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기수령 100만 명 시대는 현재의 괴로움만이 아니라 미래의 빈곤을 예고한다. 결국 노후 소득 보장의 최후 보루였던 국민연금 기능마저 부실하게 될 위험을 떠안는 셈이다.
문제는 이게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적 문제의 결과인 만큼 해결책 또한 구조적 재점검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 은퇴와 연금 수급 연령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연금 개혁 논의는 대부분 ‘보험료 인상’이나 정작 국민이 부딪히는 실제 문제는 그보다 앞선 생계 공백이다.
국민연금 조기수령 100만명 돌파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신호다. 연금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노후 빈곤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현실을 방치한 채 재정안정성만을 외치는 개혁은 반쪽짜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 논리와 생활 현실을 모두 반영한, 보다 정교한 노후 소득 보장 전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