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법정교육진흥원 대표 하충수 박사
어제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한 주부의 사연을 접했다. 지인에게 가전제품과 명품 구매 캐시백 사기를 당한 그는 변호사 선임비 150만 원이 부담스러워 소송을 망설이다가, 답답한 마음에 AI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는 법률 판단과 함께 증거 수집 방법, 타임라인 구성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핵심 증거와 보조 증거를 구분해주었고, 고소장 작성까지 도왔다. 5개월 후, 그는 승소했다. 변호사 없이.
이 사연이 알려지자 "이제 변호사가 정말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기술이 바꿔놓은 법률의 풍경
이 사례는 AI 시대 법률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법률 업무를 일반인이 AI의 도움으로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리걸테크(Legal Tech)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계약서 자동 작성, 판례 검색, 소송 결과 예측, 법률 상담까지. 과거 변호사들이 밤을 새워 하던 일을 AI는 몇 초 만에 처리한다. 단순 법률 자문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대형 로펌들은 신입 변호사 채용을 줄이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위기다. 하지만 이 변화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업무다
앞서 소개한 주부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AI가 도운 것은 판례 검색, 증거 정리, 문서 작성 같은 정형화된 업무였다. 비교적 단순한 사기 사건이었고, 증거가 명확했으며, 법리 다툼이 크지 않았다.
만약 이 사건이 복잡한 기업 간 분쟁이었다면? 법리 해석이 엇갈리는 첨예한 사안이었다면? 상대방과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면? 과연 AI만으로 충분했을까?
AI가 대체하는 것은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니라, 변호사가 수행하던 특정 업무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일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업무는 애초에 변호사라는 직업의 본질이 아니었다.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떠맡았던 작업일 뿐이다.
진짜 변호사의 역할은 따로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읽어내는 것, 법과 현실 사이에서 최선의 전략을 짜는 것, 상대방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법률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결정할 수는 없다. 확률을 제시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판례를 나열할 수 있지만 정의를 논할 수는 없다.
변화하는 변호사의 초상
AI 시대의 변호사는 과거와 다른 모습일 것이다. AI 분석 결과를 해석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전문가. 기술과 법을 동시에 이해하는 융합형 인재. 분쟁을 법정 밖에서 해결하는 조정자. 제도를 설계하고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 전문가.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들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변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계사, 의사, 교사, 기자, 모든 전문직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내가 하는 일 중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 모든 전문가가 가져야 할 태도다.
두려움이 아니라 질문으로
AI 기술의 발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직업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기다. 중요한 것은 "변호사가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떤 변호사가 살아남을 것인가"다.
그리고 이 질문은 변호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향한다.
당신의 일에서 AI가 이미 대신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 10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당신만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가 계산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 그 답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