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 박사의 세상을 밝히는 힘(15)] 인공지능 시대, 기술은 누구의 편인가?

버니 샌더스 상원 보고서가 던지는 경고

 

얼마 전 미국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의 버니 샌더스 의원이 주도한 보고서 「The Big Tech Oligarchs’ War Against Workers」가 발표되었다. 이는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노동시장에 미칠 파괴적 영향에 대한 경고음이다.

 

보고서는 기술 혁신의 이익이 지난 수십 년간 극소수 상위층에 집중되고, 이제는 ‘인공지능 노동(artificial labor)’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일자리 대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AI와 로봇의 결합은 단순 반복 노동뿐 아니라 회계, 운전, 고객 서비스 등 중간층 일자리까지 대체할 수 있으며, 향후 10년 내 최대 1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생산성은 150%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고 지적하며, AI 혁신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고 강조한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대신, 자본의 집중과 노동의 무력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AI와 자동화를 통해 ‘노동 없는 생산’을 추구하는 것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제 질서를 바꾸는 ‘인류사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기술을 통제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있다. 샌더스 보고서는 “AI의 영향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명시한다. 기술의 이익이 공공으로 환류되지 않으면, 노동자는 ‘일자리 없는 성장’ 시대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AI 최강국’을 향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실을 신설하고 대규모 투자를 확대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경쟁을 넘어 국민 모두가 AI를 일상에서 체감하고 활용하는 이른바 ‘AI 생활화’를 목표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AI를 전 국민이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AI 최강국을 꿈꾸는 우리는 과연 샌더스 논문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AI 경쟁력을 갖췄지만, 동시에 OECD 국가 중 자동화 위험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인공지능의 확산이 맞물리면, ‘노동의 질적 붕괴’가 현실화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 배달·콜센터·회계 등 서비스직은 물론 공공부문 행정 일자리까지 AI 대체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문제는 제도적 대응의 속도다. 한국의 노동 정책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고용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기술 발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노동자 보호·직업 전환·소득 보전 제도는 여전히 느리고 파편적이다. 이 불균형이 지속되면 ‘AI 양극화’는 불가피하다. 상위 1%의 기술 자본가와 나머지 99%의 디지털 프롤레타리아트로 사회가 분열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을 다섯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인간 중심 기술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술 도입의 목표를 비용 절감이 아니라 ‘노동의 품격 유지’로 재정의해야 한다. 자동화로 절감된 비용은 해고가 아닌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보전으로 환류돼야 한다.

 

둘째, ‘AI 윤리와 노동권의 통합’이 시급하다. 알고리즘이 인사평가, 채용, 해고에 사용되는 현실에서 ‘디지털 인권’은 노동권의 핵심이 된다. 정부는 AI 거버넌스 체계 속에 노동대표를 포함시키고, 공정성·투명성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셋째, ‘재교육과 사회안전망의 혁신’이 필요하다. 기술 변화는 기존 교육·고용 시스템을 완전히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단순한 직업훈련이 아니라, AI 시대의 ‘인간 고유역량(창의성·공감·윤리적 판단)’을 키우는 인문기반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기본소득이나 고용보험 확대 같은 사회보장 장치가 ‘AI 실업 시대의 안전판’이 되어야 한다.

 

넷째, ‘AI세(稅)’ 또는 ‘로봇세’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 보고서가 제안하듯, 자동화로 발생한 초과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기술 발전의 공정한 대가다. 이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사회적 계약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기술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공노동’으로 변질될 때, 인간은 더 이상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피지배자가 된다.

 

한국 사회가 이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른 사회적 상상력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빅테크의 전쟁’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