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01>

제1절 도가(道家) 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위방본’ 사상 (01)

 

 

백성이 나라의 기틀이라고 여기는 민위방본사상(民爲邦本思想)은 원래 맹자(孟子)가 주장한 학설로서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며,토지는 그다음이며,군왕은 가장 중하지 않다.민심을 얻어야만 나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조광윤은 비록 봉건군주제도 하의 제왕(帝王)이었지만,백성은 물이며 군주는 배라고 생각하여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백성을 중히 여기며,언제나 백성의 편에 서서 모든 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하였다.그는 실로 이리떼와도 같은 탐관오리들로부터 양떼 같은 백성을 지키는 목자(牧者)였다.

 

 


1. 새로운 왕조에는 새로운 정치

 

송태조 조광윤은 즉위 초기에 선행으로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원칙 아래 후주의 옛 신하들을 그대로 유임시킴으로써 되도록 변동사항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평화적 변화를 도모한다 해도 이전 왕조의 것을 모두 포용한 것은 아니었다. 전 왕조에 본받을 만한 것이 많다 해도 새 정권의 정치이념과 통치시스템에 완전히 적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 왕조의 관리들이 무절제하게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긁어모으고 횡령을 일삼는 악습을 고치지 않는 한 새 왕조의 이념에 적응될 수 없으며 그런 것은 반드시 변해야 했다.

 

후주정권의 기반 위에서 송조(宋朝)를 세운 조광윤은 통일전쟁을 거쳐 북한만 제외하고 형남, 호남, 후촉, 남한, 남당을 차례로 평정했고, 오월(吳越), 장주(漳州) 등 일부 할거정권을 스스로 송조정에 복종케 함으로써, 하드웨어(hardware) 상으로는 거의 중국의 통일을 이룩했다.

그런데 통일된 나라에서 민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통치해야 하고 천하가 안정되려면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나가야 하는가? 이것은 통치의 소프트웨어(software)로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조광윤은 “말(馬) 위에서 나라를 세울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백전불패의 군사전략가와 역전의 용장으로서 나라를 얻었다면, 이제는 민심을 얻어 나라를 다스려나가야 하는 새롭고 더 높은 차원의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民無信卽不立>.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는 일찍이 이러한 세상을 설계했다.

「국토가 아담하고 백성이 적은 나라, 귀족은 보물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멀리 떠나지 않는다네. 배와 마차가 있어도 이용할 필요가 없고,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사용할 기회가 없다. 사람들은 새끼에 매듭을 지어 기록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의상, 안전한 집과 즐거운 민속이 있는 나라, 이웃나라끼리는 서로 멀리서 바라만 볼 뿐, 닭 울음소리며 개 짖는 소리 다 들려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는다네.」

조광윤은 도가사상(道家思想)을 실천한 황제였지만, 노자의 ‘작고 백성이 적은 나라’의 설계가 자신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세상을 통일하여 전란의 고통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작고 백성이 적은 나라’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광윤은 나라를 다스리는 소프트웨어로서 “천하의 큰일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작은 일부터 세심하게 착수해야 한다.”는 도가(道家)의 지혜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공자와 맹자의 유가경전(儒家經典)을 통한 치국의 논리로 중무장하였다.

조광윤은 절대로 어느 한 왕조의 치국정책을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정성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