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얼마 전, 공군본부의 요청으로 고위직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교육은 기관장의 참석 없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공군은 달랐다.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고위직 간부들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웠고, ‘공군 조직문화와 성인지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되짚는 진지한 시간이었다.
조직문화는 그 조직의 분위기이자 태도이며, ‘누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중심에는 리더가 있다. 리더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표정 하나, 심지어는 침묵까지도 구성원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나는 리더를 '파워 인플루언서(Power Influencer)'라 부른다. 직급이 높을수록 그 조직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적이기도 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군 내 성희롱 사건은 전체 사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의 문제라는 방증이다. 그 바탕에는 ‘침묵’이라는 고질적인 분위기가 한 몫 한다. 침묵은 행위자에겐 묵인과 관용이 되고, 피해자에겐 더 큰 고통이자 2차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희롱과 성폭력을 막기 위한 조직의 힘은 리더만의 몫이 아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원의 행동 역시 예외일 순 없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이 ‘방관자’가 아닌 ‘개입자’로 서야 한다. 차별적 언행을 들었을 때 “그건 불편합니다”라고 말하는 용기, 피해자 곁에서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연대하는 태도, 공동체 전체가 “이건 옳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는 문화. 이것이 진정한 예방이다.

회식 자리에서의 농담, 무심코 건넨 시선, 회의 중의 침묵조차도 조직 문화의 일부다. 건강한 문화란 법을 지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리더의 자각과 구성원의 실천이 어우러질 때 조직은 ‘강한 군’을 넘어 ‘존중받는 군’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은 이등병부터 참모총장까지 누구도 예외가 없다.
루마니아 출신 인권운동가 엘리 위젤은 “중립은 억압하는 자를 도울 뿐, 억압받는 자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침묵은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것일 뿐,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결코 힘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말은 지금 우리 조직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불편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길, 그것은 바로 ‘침묵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