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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65] 문덕수 ‘조금씩 줄이면서’

잔고를 조금씩 줄이면서

석류알처럼 눈뜨고 싶구나.

 

그동안 흐드러지게 꽃 피우거나

나비 벌들 떼지어 윙윙 몰려와

제풀에 뚝뚝 떨어져 묻히는

꿀 단지 하나 그득히 빚은 일도 없으나

 

잎사귀들 한두 잎씩 떨어뜨리고

곁가지 곁넝쿨도 조금씩 쳐내고

몰아치는 성난 돌개바람이나

괴어서 소용돌이치는 물줄기도 돌려서

 

겨우내 개울둑에 알몸으로 홀로서서

이브처럼 눈뜨고 싶구나.

 

- 문덕수, 시 ‘조금씩 줄이면서’

 

이번 칼럼에서는 ‘청태’ 문덕수 시인이 쓴 ‘조금씩 줄이면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1928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문 시인은 1955년 10월 현대문학에 시 ‘침묵’을 공개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1956년 ‘바람 속에서’ 등이 추천 완료돼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주로 주지시를 썼다. 그의 시는 무의식 속 순수한 이미지를 새롭고 참신한 감정으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문학계로부터 이끌어냈다. 실제 ‘조금씩 줄이면서’는 그의 순수 심리주의 경향이 뛰어나며, 자아의 성찰, 내면세계의 추구하는 바가 잘 형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이웃국가인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는 점이다. 일본 넷플릭스의 많이 본 콘텐츠 순위를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휩쓸었다는 조사가 나왔다.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일본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상위 10개 중 무려 9개가 한국 콘텐츠로 집계됐다. 1위는 연상호 감독의 ‘지옥’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긍정적인 승전보가 이곳저곳에서 울린다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조금씩 조금씩 불명예 꼬리표는 떼고 가벼운 발걸음을 걷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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