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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채널(1)

박선희 박사가 밝힌 힐링 칼럼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는 틱낫한 스님은 마음을 수천 개의 채널이 있는 텔레비전에 비유한다. 우리가 선택하는 채널대로 그 순간순간의 우리가 존재하게 되는데 분노라는 채널을 키면 우리자신은 분노가 되고, 평화와 기쁨의 채널을 키면 우리는 평화와 기쁨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부에서 의도하지도 않은 잡념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한가한 일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려고 포트에 물을 넣다가 지난여름 동생이 멕시코에서 사다준 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달 동생하고 심하게 말다툼했던 기억이 오늘 아침 또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마음이란 놈은 내가 그 채널을 굳이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어느 순간 내 감정 안에 들어와 있음을 종종 발견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그 어떤 것에 의해 기억이 나고 그 과거의 기억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과거의 순간으로 되돌아 간 듯이 미간엔 힘이 들어가고, 심장은 빠르게 뛰고, 체온이 올라가고 호흡 또한 거칠어진다. 이는 단지 생각만을 한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함께 동반된 생리적 반응 까지도 되살아 난 것이다.

 

도대체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생각에 끌려가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때도 있다. 문득 내 의식이 생각에 의해 점령당해 있음을 느낀다. 내 영혼의 의지는 무시당하고 멈춰지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의 올가미에 붙잡혀 버린 경우인 것이다. 내 마음의 채널은 과연 내 의도에 의해 선택한 것일까?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길 사람은 두 존재가 우리들 안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기적인 에고 ego 이고 다른 하나는 숨어 있는 영적존재 hidden spiritual being 이다.

 

에고의 존재는 수다스럽고 요구하는 게 많고 히스테리칼하고 계산속이 빠르기 때문에 명령하고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내면에서 들리는 너무나도 많은 목소리들, 내가 누군데... 용서할 수 없어... 그렇게 하면 네가 손해잖아… 나는 죄인이야…모두들 내 험담을 하고 있어…죽고만 싶어…이렇게 감추어진 마음의 상처는 에고의 지배아래 분노와 근심, 죄의식으로 인식되어지고 우울증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의 조용하고도 지혜로운 음성을 가진 숨어있는 영적인 존재의 소리는, 많은 이들은 거의 듣지 못하거나 그런 것이 존재하는 줄도 모른다. 왜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단 사회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안정되고 보장된 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는 에고의 소리에 따르며 살아가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식이 그러하고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그리고 부모로 부터 받은 교육이 그러하고, 그리고 온통 내주의 가 그러하니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고의 소리를 듣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하나의 지혜로운 내적존재의 소리를 든는 것에는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에고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상태를 겨우 몇 분간도 유지하기 힘이 든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면의 지껄임을 침묵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실패와 고통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그 소리에 어렴풋이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우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언제든지 숨어 들어서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는 침묵의 성소가 있다. "이 문구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세계적인 영성가이며 내과 의사이기도한 디팍 초프라는 이 성소란 단순히 안도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으로는 세상의 혼란이 파고 들어오지 못한다. 이곳에는 마음의 충격도 없으며 정신적인 상처도 쌓여 있지 않다. 여기가 바로 명상으로써 찾으려고 하는 정신적인 공간이다”

 

좀 더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 더 이상 에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들, 이 소리의 진정한 의미의 평안함을 맛본 이들은 ‘명상’ 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성소를 찾아내는 것이 그 바램을 이루는 첫 번째 단계 일 것이다. 끊임없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러한 자아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파묻혀 있는 잠재된 의식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에고의 지껄임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내적 존재의 소리를 듣는 것에 친숙해 지는 것.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채널대로 그 순간순간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디팩 초프라 (Deepak Chopra),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균형역, 정신세계사 (1994)

 

LA 태고사, 틱낫한스님 마음의채널, http://www.taegosah.org/bbs/board.php?bo_table=B36&wr_id=98&sfl=mb_id%2C1&stx=omnikane&sst=wr_hit&sod=asc&sop=and&page=1

 

 

 

글쓴이 -  박선희 의료인류학박사

 

중앙대학교 졸업

 

일본 동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의료인류학박사)

 

동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영국 SOAS university of London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근무

 

영국 런던 Roehampton University 석사학위취득(Dance movement psychotherapy 전공)

 

현재 미국 버지니아에서 춤 동작 심리 치료사 안무가로 활동.

 

움직임을 힐링예술의 형태로 개발한 Art of Healing Movement (AOHM)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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