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들에는 오곡백과 풍성하네 그려. 저 멀리 여객선 통통소리 들릴 듯, 바다에는 흰 파도 흰 파도라네. 밤하늘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으면, 멍석이라도 길에 펼쳐놓고 지난 얘기 밤 깊어가네. 반딧불 번쩍번쩍 이따금 시원한 바람, 이마를 스쳐가면 선풍기가 필요없다. 고향의 집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우태훈, 시 ‘고향의 집’ 필자가 지난 2008년 상반기 시인 커뮤니티인 ‘시마을’에 출품작으로 낸 ‘고향의 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부동산 문제와 ‘살짝’ 궤를 같이 한다. 요즘 수도권 어디를 가 봐도 꼭 언급되는 말이 있다. 바로 “재개발”이다. 필자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서남촌 갯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갯마을은 재개발로 인해 현재 과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뿐인가. 필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갯마을에는 수많은 반딧불들이 밤하늘을 비췄다. 어릴 적엔 반딧불을 잡으려고 여러모로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가을철 풍성한 들녘이 펼쳐지고, 여름밤엔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혀주던 내 고향. 아련한 추억이 깃든 그곳은 차마 잊혀지지가 않는다
▲우태훈 시인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시 ‘그릇’ 이번 칼럼에서는 오세영 시인의 그릇이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 시인은 1942년 전북 전주시 인후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졸업한 후 시인으로 우리문학을 살찌우는데 주력했다. 오 시인의 시 ‘그릇’은 첫 문장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는 파격적인 문장은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칼은 무엇이던지 벨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모두 그릇을 깨트려 다쳐본 경험들이 있다. 이를 비춰볼 때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매우 강렬하다. 그릇이 깨진다고 하면 보통 문학계에서는 균형이 흐트러진 것으로 해석한다. 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이런 점은 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는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고 부연했다. 이 시는 코로나 사태에 신음하는 우리사회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우태훈 시인嬴氏亂天紀 賢者避其世(영씨난천기 현자피기세) / 黃綺之商山 伊人亦云逝(황기지상산 이인역운서) 往迹浸復湮 來逕遂蕪廢(왕적침복인 내경수무폐) / 相命肆農耕 日入從所憩(상명사농경 일입종소게) 桑竹垂餘蔭 菽稷隨時藝(상죽수여음 숙직수시예) / 春蠶收長絲 秋熟靡王稅(춘잠수장사 추숙미왕세) 荒路曖交通 鷄犬互鳴吠(황로애교통 계견호명폐) / 俎豆猶古法 衣裳無新製(조두유고법 의상무신제) 童孺縱行歌 斑白歡游詣(동유종행가 반백환유예) / 草榮識節和 木衰知風厲(초영식절화 목쇠지풍려) 雖無紀歷志 四時自成歲(수무기력지 사시자성세) / 怡然有餘樂 于何勞智慧(이연유여락 우하노지혜) 奇蹤隱五百 一朝敞神界(기종은오백 일조창신계) / 淳薄旣異源 旋復還幽蔽(순박기이원 선부환유폐) 借問游方士 焉測塵囂外(차문유방사 언축진효외) / 願言躡輕風 高擧尋吾契(원언섭경풍 고거심오계) -도연명(陶淵明), 시 ‘도화원기 본문(桃花源記 本文)’ 전 칼럼에서 ‘도연명(陶淵明)’ 시인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서문을 다뤘다. 이에 이번 편에서는 본문을 다뤄보고자 한다. 도화원기의 본문 역시 서문과 마찬가지로 관직사회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는 서문보다 그 이면이 더욱 적나라하게 설명된다. 본
▲우태훈 시인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협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낙영빈분)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舍船從口入.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임진수원편득일산.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량)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남여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대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惋. (문금세하세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차인일위구언 소문개탄완)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
▲우태훈 시인冬十二月歲辛丑(동십이월세신축) 我初從政見魯叟(아초종정견노수) / 舊聞石鼓今見之(구문석고금견지) 文字鬱律蛟蛇走(문자울률교사주) 細觀初以指畫肚(세관초이지화두) 欲讀嗟如箝在口(욕독차여겸재구) / 韓公好古生已遲(한공호고생이지) 我今況又百年後(아금황우백년후) 强尋偏旁推點畫(강심편방추점화) 時得一二遺八九(시득일이유팔구) / 我車旣攻馬亦同(아거기공마역동) 其魚維鱮貫之柳(기어유서관지류) 古器縱橫猶識鼎(고기종횡유식정) 衆星錯落僅名斗(중성착낙근명두) / 模糊半已隱瘢胝(모호반이은반지) 詰曲猶能辯跟肘(힐곡유능변근주) 娟娟缺月隱雲霧(연연결월은운무) 濯濯嘉禾秀稂莠(탁탁가화수랑유) / 漂流百戰偶然存(표류백전우연존) 獨立千載誰與友(독립천재수여우) 上追軒頡相唯諾(상추헌힐상유낙) 下挹冰斯同鷇㝅(하읍빙사동구누) / 憶昔周宣歌鴻雁(억석주선가홍안) 當時籒史變蝌蚪(당시주사변과두) 厭亂人方思聖賢(염난인방사성현) 中興天爲生耆耈(중흥천위생기구) / 東征徐虜闞虓虎(동정서노감효호) 北伐犬戎隨指嗾(배벌견융수지주) 象胥雜遝貢狼鹿(상서잡답공낭녹) 方召聯翩賜圭卣(방소련편사규유) / 遂因鼓鼙思將帥(수인고비사장수) 豈爲考擊煩矇瞍(개위고격번몽수) 何人作頌比嵩高(하인작송비숭고) 萬古斯文齊岣嶁(만고사문제구루)
▲우태훈 시인.대밭에 쭉쭉 ‘대(竹)’가 솟아 있다. 날카롭게 일직선으로 위로만 뻗은 키, 곧은 마디 마디. 왕조시대에 민란에 앞장선 원통한 분노, 분노가 죽창으로 꽂혀 있는 ‘대(竹)’. 다시 보면 여름에도 차가운 감촉, 군살 하나 없이 온몸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하늘에 닿아 있다. 혼자 있거나 무리지어 있거나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대(竹)’, 밤중에도 꼿꼿하게 서서 잠잔다. 깨뜨려도 부서지지 않고 대쪽이 되는 ‘대(竹)’. 꽃은 피우지 않는다. 꽃 피면 죽는 개화병, 격렬한 사라짐이 있을 뿐이다. -이형기, 시 ‘대(竹)’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시 한편을 ‘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달 19일 7차 칼럼에서 이 시인의 ‘낙화’를 소개한 바다. 하지만 이 시인의 시는 ‘낙화’뿐 아니라, 소개하고픈 시들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이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대(竹)’를 이번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시의 제목인 ‘대’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민초(民草)’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필자는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에는 “왕조시대에 민란에 앞장선 원통한 분노
▲우태훈 시인.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 ‘행복’ 코로나 시국으로 국민들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국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시가 또 어떤 게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유치환 시인의 작품인 ‘행복’에 눈에 들어왔다. 행복을 비롯해 유 시인의 다수 작품들을 살펴보면, 생명에 대한 열정을 강렬한 어조로 부각하는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 시인의 행복은 다른 작품들보다 그 어조가
▲우태훈 시인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추게 하세요, 그러면 내 머리가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내 머리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핏 속에서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 ‘내 눈을 감기세요’ 지난 9화차 칼럼에 이어 이번에도 서양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칼럼의 주인공이던 루 살로메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의 ‘내 눈을 감기세요’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인 릴케는 187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비롯한 다수의 명작을 만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가 독일의 유명한 문학가가 된 데 대해 많은 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실제 문학계에서도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실의 직할지’인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난 릴케가 불우한 환경을 딛고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우태훈 시인정녕 벗이 벗을 사랑하듯이 나 너를 사랑하노라 수수께끼의 삶이여. 내가 네 가슴 속에서 기뻐하고 울고 네가 내게 보는 기쁨을 주는데도 나는 네 행복도 불행도 사랑한다. 네가 나를 파멸시키는 일이 있어도 벗이 벗을 품에서 떠날 수 없듯이 나는 네 팔을 뿌리칠 수 없어라. 나는 너를 힘껏 끌어안는다. 네 불꽃으로 내 정신을 태워라. 그리고 투쟁의 대결 속에서 네 실제 수수께끼를 풀게 해다오. 수천년 삶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는 네 팔에 몸을 던져라. 네가 내게 더 이상 행복을 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좋다 너는 내게 계속하여 네 고통을 보내 줄 것이다. -루 살로메, 시 ‘삶의 기원’ 시담 칼럼을 쓰면서 처음으로 서양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루 살로메 시인의 ‘삶의 기원’이다. 1861년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루 살로메 시인은 독일로 건너가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는 또 당대 저명한 작가이자 심리학자인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와 연관이 깊은 인물이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녀를 ‘당대 지식인들의 프리마돈나’라고 지칭했다. 작품을 만드는 능력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그녀
▲우태훈 시인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