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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 환청 (15)

박선희 박사의 힐링칼럼

요즘 ‘시카고 타자기’라는 흥미로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시카고에서 보내온 오래된 타자기 안에 봉인되어 있던 유령이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앞에 나타나 대필을 해주는 유령작가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편 작가와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던 유령과 여자주인공, 이 세 명이 함께 보냈던 전생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작중에는 처음 보고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 보이는 데자뷔(Déjà Vu)현상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진짜유령인 유령작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자신이 신 내림을 받은 것이냐며 이제 박수무당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장면이 인상 적이었다.

 

유령 혹은 헛것이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것을 환시 환청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환시 환청을 보는 사람은 보통 비정상적인 사람 즉 정신분열증 환자나 마약중독자, 또는 신과 사람의 영매역할을 하는 샤먼들이다. 과연 환시 환청이 보이는 사람이 비정상인가 아닌가에 관해서는 논하기 어려운 문제이나 사회에서는 이러한 환각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정신분열증 (조현병) 환자로 치부한다.

 

천재 수학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받은 바 있는 존 내쉬 (John Forbes Nash)는 정신분열병 환자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는 50년간 조현병에 시달린 존 내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49년 존 내쉬의 나이 21세에 ‘내쉬 균형’이라는 이론의 학위 논문(27쪽 분량)을 쓰고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고, 그 이론으로 1994년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의 병적 증세가 문제가 된 것은 30대 부터였다. 망상성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그는 결국 MIT 교수직에서 물러나 10여 년간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살아야 했다. 회복세를 보이자 1970년대 이후 내쉬는 약물 복용을 중지하고 망상과 환청이 따라다녀도 이를 무시하고 연구생활을 계속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그에게는 환영 또는 허구의 인물이 항시 함께했으며, 그는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중 이런 말을 한다. “어떤 특별한 숫자가 보이는 때가 있는데 이는 굉장한 우연으로 천국에서 보내준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이 발언에서 내쉬는 그의 천재성에는 어떤 특별한 직관적 영적능력과의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말을 하면서 피씩 겸연쩍게 미소를 짓는 내쉬의 모습이었다. 그는 천부적으로 논리적 사고를 소유한 천재수학자로서 물질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 그리고 비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혼란 속에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의 겸연쩍은 미소 안에는 심층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이 사려 된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학계의 거물로서 그렇지만 오랜 정신병 병력을 가진 수학자의 입장에서 비논리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해온 영적직관 혹은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빙의된 신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만약 내쉬가 정신병환자로 내몰리지 않고, 환시 환청현상을 영적능력으로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샤먼이었다면 그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샤먼들은 입무入巫하기전 신병神病이라는 것을 앓는다. 이병은 제구실을 할 수 있는 한사람의 샤먼이 되기 위한 전조현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신병이 무당이 되기 위한 전조현상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이병의 증상으로 인해 정신질환으로 진단받거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신병은 까닭도 없고 원인도 모를 병을 앓기 시작하여 어떤 치료를 받아도 효험이 없어 고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환상, 환청을 일으키고 심해지면 정신착란을 일으켜 집을 뛰쳐나가 산이나 들과 같은 곳을 헤매기도 한다. Kalweit (1984) 가 말하듯이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도 존재하는 샤먼들은 모두 신병을 경험한다. 한국의 무당 또한 거의 대부분이 신병을 경험한다. 필자가 취재한 어느 한 무당의 인터뷰 내용 보면 이렇게 말한다. “신병 때는 하얀 할머니도 보이고 뿔난 짐승도 보이고 눈만 감으면 헛것이 보이는 거야. 그 당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피곤해서 겨우 잠이 들면 누군가 불러서 나가. 그때 내가 상계동에 살고 있었는데 불암산에도 끌고 가고 알지도 못하는 음침한 곳에도 데려다 놓곤 해. 깨고 나면 섬뜩하지. 우리 아버지라는데 똑똑히는 안보여. 내 정신은 있어, 하지만 끌려가는 거지.”

 

이것이 신병임을 알게 된 자들은 보통 내림굿을 하고 나면 증세가 호전된다. 그들은 환시 환청을 동반한 빙의현상이 신의 저주가 아닌 신의 선택을 받은 자임을 받아들이고 영적능력을 연마하게 된다. 그러나 내림굿을 받았다고 해서 신과 인간사이의 영매역할을 바로 유능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갓 영매가 된 초기시절에는 심한 정신적 혼동을 경험한다. 샤먼이 되기 전 그들 또한 보통사람들이었다. 이성 중심적인 보통사람의 삶의 방식에서 직감과 영성 중심적인 생활과 마음가짐으로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자아와 정체성에 혼동을 겪는 성무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의 길을 선택한 샤먼들은 영적능력을 더욱 높이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자기수련에 몰두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존 내쉬도 그리고 샤먼들도 초기에는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빙의와 환각증세에 처절하게 시달린다.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말이다. 이 두 이야기는 위험한 정신착란 상태에서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서는 자아를 상실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빙의란 무엇이며 제어할 수 없는 빙의란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96Yb-w7427U The Beautiful Mind of John Nash : Documentary on the Life and Struggles of John Nash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

 

朴善姫,永川祐三,(1998),韓国シャーマンの心理特性について,精神療法,第24巻第3号,金剛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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