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휘엉청 달빛 아래 펄럭이는 치맛자락

곧 추석(秋夕)이 다가온다. 농경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은 음력 8월 15일 추석을 큰 명절로 여겼다. 추석엔 수확을 축하하고 감사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과도 비슷하며 가을, 수확, 감사, 풍요의 의미를 지닌다.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 가위, 한가위, 가배(嘉俳)라고 하는데 특히 신라의 가배 풍속은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때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당시 여자들이 두 팀으로 나눠 길쌈을 하고 두 팀의 베 짜기 솜씨와 성과를 비교해서 진 팀이 이긴 팀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노래와 춤을 추며 놀이를 즐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추석에는 햅쌀로 만든 송편ㆍ햇과일ㆍ제사(祭祀)ㆍ차례(茶禮)ㆍ벌초ㆍ성묘ㆍ추석빔이 떠오른다. ‘빔’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을 맞아 새로 마련하여 입는 옷 또는 차림을 뜻한다. 추석을 맞아 아이들의 옷을 새로 장만하거나 할머니,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바느질하여 새 옷을 만들어 입히는 풍습이 있었다.
나는 6남매 중 옛말에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엄마는 아들을 낳기 위해 딸 다섯을 낳고 다행히 막내 남동생을 얻었다. 엄마는 추석 땐 늘 여러 가지 과자, 사탕, 카라멜 등 맛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 선물 박스를 하나씩 나눠 주셨고 딸들에게는 색깔과 모양이 같은 한복을 사주셨다. 빨간 숙고사 치마에 노란색 색동저고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다 같이 서 있으면 마치 5폭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추석빔을 늘 기다렸다.

 

추석빔을 차려입는 즐거움 못지않게 추석에는 온 동네가 함께 즐기는 놀이도 있었다. 강강술래도 그중 하나이다.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수확 감사제, 상고시대 수렵인의 무용, 노래나 유희 등 여러 설이 있다. 물론 강강술래처럼 여럿이 원을 이루어 손을 잡고 추는 집단 무용은 세계 여러 지역과 민족에게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896년 진도에 유배되었던 정만조의 『은파유필』에는 추석날 진도 여성들이 달빛 아래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겹저고리(기존 역해에서는 ‘겹바지’로 번역하였으나 필자는 복식 용례상 ‘겹저고리’로 해석하였다)와 홑치마를 옅은 색으로 지어 입고 무리 지어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과 돌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춤을 시로 남겼다.

 

강강술래의 복식은 지역과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강강술래에서는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는다. 휘엉청 달빛 아래 흰옷은 더욱 환하게 빛나고, 뛰고 돌 때마다 펄럭이는 저고리의 고름과 치맛자락은 경쾌함과 생명력을 더한다. 강강술래만큼이나 여성들이 단체로 마음껏 신나게 뛰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놀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강강술래는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보다는 예술성과 시각 효과를 주기 위해 여러 색의 옷을 입지만 강강술래에 담긴 의미와 상징성은 여전하다.
강강술래는 196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ㆍ전승되고 있으며,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올 추석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마음으로, 모두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