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장현순 기자 | 국내 주요 기업들이 관세와 세제 혜택,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미국 생산거점을 잇따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 핵심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지도도 빠르게 재편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었다. HPLS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추진하는 260억달러(약 36조10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의 일환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3월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간 21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미국 내 생산과 조달도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미국 판매 차량의 80% 이상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부품 현지 조달 비중을 60%까지 높인다는 방침이다.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비롯한 미국 내 생산능력은 약 100만대 규모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생산기지를 확대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의 생산 기능을 나누는 방식으로 현지화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첨단 패키징 공장 착공식을 열고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와 연구개발(R&D) 시설을 구축한다.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한국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미국으로 가져와 HBM으로 패키징·검사한 뒤 현지 고객사에 공급한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따라 최대 4억50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5억달러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핵심 메모리 생산 기능은 한국에 유지하고 미국에서는 첨단 패키징과 R&D, 현지 공급을 담당하는 구조다. 국내 생산기반을 미국으로 이전하기보다는 양국이 생산 기능을 나눠 현지화하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미국 미시간주 랜싱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서 북미 5대 생산거점 체계를 완성했다. 데이터센터 확대와 재생에너지 보급으로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현지 생산능력을 확대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퀸크릭에는 4조2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한 이후에는 미국 내 일부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등 현지 생산체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미국 생산 확대에는 관세와 세제 혜택, 공급망 재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 등을 통해 자국 내 생산과 공급망 구축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통과된 ‘OBBBA’에선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이 기존 25%에서 35%로 상향됐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도 미국 현지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 관세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현지 고객사와 공급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투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상호관세 이후 글로벌 통상질서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 국내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중소기업 중심 산업 생태계의 공동화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 바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어떤 기능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어떤 기능을 국내에 남길지다”라면서 “SK하이닉스처럼 핵심 메모리 생산과 기술 역량은 국내에 유지하면서 미국에서는 첨단 패키징과 현지 공급을 담당하는 방식이라면 해외 생산 확대가 국내 산업과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