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머리 위의 하늘, 발아래의 피조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에서 우리 세대에게도 생소한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도 저렇게 도포를 입고 갓을 쓰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가벼운 상상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 인류의 문명사를 돌아보면,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언어의 우연과 글자의 대칭 속에서 때로는 깊은 영적 진실을 발견하곤 한다. 19세기 말, 한양 거리를 거닐던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 가장 인상 깊게 들어온 것은 조선 선비들의 머리에 얹힌 검은 모자였을 수도 있다. 이 모자의 이름을 묻는 이방인의 질문에 조선인들은 단정하게 "갓"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서양인들의 귀에 자신들이 가장 높여 부르던 존재, 즉 'God(하나님)'의 음성으로 신비롭게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히 서로 다른 두 언어가 우연히 닮은 꼴을 한 해프닝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동서양 문명이 하늘을 대하는 방식에서 피어난 보편적인 마음의 공명이었을까. 우리말 '갓'은 본래 테두리를 뜻하는 '가두리'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머리 위에 얹히는 순간 인간이 하늘 아래서 갖추어야 할 경건함과 예의의 상징이 되었다. 말총과 대나무로 가늘고 투명하게 짜여 빛과 바람이 그대로 통하는 이 모자는, 하늘을 완전히 가리지 않은 채 스스로를 낮추고 자연과 하늘의 도리를 묻던 선비들의 겸손한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언어적 연결고리는 서양 문명의 맥락 속에서 또 다른 대칭을 이루며 깊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영원하고 지고한 창조자를 뜻하는 'God'의 철자를 거꾸로 뒤집으면, 지상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피조물인 개, 즉 'Dog'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두 단어의 역사적 유래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이 기막힌 철자의 반전(대문·對文)이 주는 상징성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가장 높고 거룩한 영역인 'God'과 지상에서 가장 낮고 친근한 영역인 'Dog' 사이에 바로 우리 인간이 서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늘 이 두 축 사이에서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고민해 왔다. 하늘에 계신 신(God)을 바라보며 스스로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고 머리 위에 '갓'을 얹어 마음을 다잡는 동안, 발아래 지상에서는 가장 낮고 연약하지만 끝까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충직한 생명체인 개(Dog)와 눈을 맞추며 삶의 온기를 나눠온 것이다. 피조물인 개가 보여주는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은, 어쩌면 인간이 천상에서 갈구하던 신성한 사랑의 성품을 지상에서 가장 낮은 몸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결국 조선의 선비가 머리 위에 갓을 고쳐 쓰며 하늘의 뜻을 묻던 의식이나, 서양의 사상가들이 'God'과 'Dog'라는 두 단어의 대칭 속에서 생명의 순수함을 바라보던 시선은 하나의 지점으로 모인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인간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존재다. 오늘날 거대한 기술 문명과 인공지능(AI)의 시대 앞에서 우리가 다시 이 모자의 어원과 글자의 대칭을 되새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머리 위의 하늘을 잊은 채 지상의 욕망에만 눈이 어두워진 문명은 결코 영성적인 깊이를 가질 수 없으며, 발아래의 낮은 생명에 대한 따뜻한 공감을 잃어버린 인간은 결코 진정한 지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의

 

'갓'에 담긴 하늘의 뜻과, 'God'과 'Dog'가 교차하며 전하는 초월과 낮아짐의 은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나지막이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머리 위에 어떤 가치를 모시고 있으며, 발아래 어떤 진실한 온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주목할 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