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대통령’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정치적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질문이다.
‘나라면 저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이 이어진다.
‘사람은 결국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가.’
신용대 작가가 김대중 대통령의 긴 삶을 따라가며 바라본 것은 수많은 시련이었다. 납치와 투옥, 사형선고, 망명과 정치적 패배.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련의 숫자가 아니다. 그 순간마다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완성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흔들리고, 가족을 걱정하고, 절망 속에서 기도하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모습도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이러한 삶의 과정을 상징한다. 고향을 떠나는 바다가 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바다가 있다.
절망을 견디며 건너야 하는 바다가 있고,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건너야 하는 바다가 있다.
서로 다른 지역과 기억을 연결하는 바다도 있다. 하의도와 목포, 창녕과 마산, 호남과 영남, 주인공과 작가의 서로 다른 삶은 작품 속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만나고 다시 연결된다. 바다는 그래서 동서화합의 바다가 되고, 포용의 바다가 된다.
하지만 작가가 가장 멀리 바라본 바다는 따로 있다. 화해와 용서의 바다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너가는 가장 어려운 바다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증오에만 머물지 않고 다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속 ‘바다’는 지리적인 공간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바다의 시작과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작가는 특히 지금 어렵고 방황하고 있는 젊은 세대가 이 작품을 읽기를 바란다. 김대중 대통령을 어떤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 인간이 수많은 시련을 어떻게 견디고 다시 일어섰는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 역시 지금의 어려움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내 인생의 끝은 아니다.’
이것이 작품이 젊은 세대에게 건네고 싶은 가장 큰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작가 역시 삶에서 여러 위기와 실패를 경험했다. 직장생활에서는 정리해고라는 힘든 순간도 겪었다. 어려운 시기에 성경 구절과 기도를 붙잡으며 버텼던 경험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그래서 시련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다.
작품은 독자에게 특정한 평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그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도 각자의 자리에서 읽을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나는 저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나에게도 건너야 할 바다가 있는가. 그리고 결국 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바다로 간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대통령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다시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면서 건너야 할 자기만의 바다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의 바다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의 바다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떠나는 바다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가는 바다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넓고 건너기 어려운 바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바다일 것이다. 그 바다를 건너는 마지막 방법은 결국 손을 내미는 것이다.
씨름에서 상대를 넘어뜨린 뒤 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듯, 서로 생각이 다르고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작품이 바라보는 화해의 모습이다.
그래서 ‘바다로 간 대통령’의 가장 먼 곳에는 바다가 있다. 그러나 그 바다의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대통령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소설. ‘바다로 간 대통령’이 건너고자 했던 가장 먼 바다는 바로 ‘화해와 용서의 바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