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양노 교수의 한복이야기 - 20세기 한복 ③

1970-80년대는 정치·사회·문화 전반에서 대중의 힘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전태일 분신, 직선제 대통령 선거, 유신헌법 확정, 장발과 미니스커트 경범죄 처벌, 영화법 개정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르며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70년대 후반은 강남 아파트 개발로 인한 부동산 열풍, TV 보급과 안방극장, 드라마 열풍, 스포츠 경기 관람, 트로트가수와 포크송 가수, 여성상위시대, 유니섹스 스타일 등 대중문화와 소비 시장의 변화는 패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대 초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 장영자 부부의 약속어음 사기 사건에 참고인으로 한복집 대표가 뉴스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있었다.
70년대, 80년대는 그랬다. 영부인이나 상사의 부인이 어느 한복집에서 한복을 맞추는지가 유행을 이끌었고 입소문 하나가 한복집의 명성을 좌우한 시대였다. 한복집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1970~1980년대를 20세기 ‘한복의 전성기’라 생각한다. 70년대에 ‘한복 디자이너’, ‘고급 맞춤한복’이란 용어가 등장하면서 한복 시장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1세대 한복디자이너 이리자, 이영희 그리고 맞춤한복으로 황신엽, 이헌정이 활약했다. 또 허영이 한복용 마네킹을 처음 제작하여 서양 마네킹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한복의 자태를 단아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크게 느낀 변화는 이리자의 A라인 한복 치마, 깃 없는 두루마기, 실용적 금박지 개발, 함석으로 만든 옷본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디자인한 한복은 미스코리아가 국제미인대회에서 세 차례나 최우수 민속의상상을 받아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70년대에는 해외 이주 증가로 출국 시 한복은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원래 한복은 치마와 저고리 색의 조합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반면 서양의 예복은 아래ㆍ위가 같은 소위 싱글 양복이다. 그런 연유인지 70년대에 느닷없이 치마와 저고리를 같은 색으로 하는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고, 기계자수로 화려한 무늬를 수놓거나, 물세탁이 가능한 물씰크 옷감 등 실용성을 강조한 한복이 유행하였다.

 

86 아시아게임, 88 올림픽개최는 국가 상징으로서 한복의 가치,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재고와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모처럼 한복 시장이 활력을 되찾고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개량한복의 동반 성장도 강조되었다. 생활한복을 중심으로 천연소재, 천연염색, 전통색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새로운 틈새시장도 생겨났다.
한편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이 항쟁의 상징으로 생활한복을 입고 민주화를 외친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갖던 생활한복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되었다.
아파트와 보일러 설치 등으로 난방시스템이 좋아져 한겨울에도 얇은 노방의 깨끼바느질한 한복을 입었다. 그래서 계절감이 사라진 ‘사철깨끼’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1970~80년대는 한복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시대였다. 전통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한복 문화의 토대 또한 그 시기에 마련되었다.


주목할 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