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대정신의 변천,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인류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왔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그 질문과 답의 총합을 우리는 흔히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부른다.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시대정신은 단연 ‘재건과 생존’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일본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한국 역시 전쟁의 상흔 속에서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다. 개인의 꿈보다 국가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근면, 절약, 희생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았다. 오늘날 선진국의 기반이 된 산업화와 사회기반시설은 바로 이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대정신은 ‘성장과 발전’으로 옮겨갔다. 미국은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었고,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으며,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더 잘사는 삶을 꿈꾸었다. 기업은 성장했고 대학 진학률은 높아졌다. 그러나 물질적 성장의 이면에서는 인간성 상실과 소외라는 그림자도 함께 커져갔다.

 

1980년대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반성의 시대였다. 대학가에서는 실존주의, 인본주의, 마르크스주의가 논의되었고,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인간이 소유에 집착할 것인가 존재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를 물었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산업사회를 넘어서는 미래 문명을 예견했다. 민주화 운동과 사회개혁 논의가 활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 시대의 비전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 더 나은 사회였다.

 

1990년대는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이념의 시대가 저물고 시장의 시대가 열렸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인터넷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국경 없는 경쟁과 무한한 기회를 이야기했다.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영어와 정보기술이 새로운 교양이 되었다.

 

2000년대의 시대정신은 '성공과 경쟁력'이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 사회는 생존 경쟁의 논리를 더욱 강하게 받아들였다. 스펙, 자기관리, 성과가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개인의 성공 전략을 설명하는 대표적 저작으로 읽혔다. 토플러가 예견했던 정보화 사회는 현실이 되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인간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010년대는 디지털 혁명의 완성기였다. SNS와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었고, 빅데이터와 플랫폼 경제가 등장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인간관계는 얕아졌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성공보다 행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웰빙, 마음챙김, 치유, 공감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의 위치를 다시 묻게 했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임을 일깨워 주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대정신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인공지능 혁명은 인간의 역할 자체를 질문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AI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의미를 만들지는 못한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행복은 자동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시대정신은 늘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집단적 응답이었다. 전쟁은 재건을 낳았고, 가난은 성장을 낳았으며, 풍요는 존재의 의미를 찾게 했다. 경쟁은 성공을 추구하게 했고, 성공의 피로는 다시 행복과 치유를 찾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2026년 현재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기술과 인간성의 조화'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 지식보다 지혜가, 정보보다 의미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반세기 전 "소유할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를 물었다. 오늘의 우리는 그 질문을 조금 바꾸어 다시 물어야 할지 모른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것인가."

 

시대정신은 변하지만,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질문만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