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내년도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 이상으로 편성하고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 세수를 활용해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미래·청년·지방·교육 등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공감할 만하다.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미룰 수는 없다. 단 재정은 의지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과 새로운 기금을 추진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투자의 명분이 아니라 재원의 지속 가능성과 집행의 효율성이다.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가져올 초과 세수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추가 세수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이다. 호황기에는 막대한 세수를 안기지만, 불황기에는 세수 감소 폭도 크다. 일시적인 호황을 전제로 새로운 재정사업을 확대할 경우 향후 경기 변동에 따라 재정 운영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산 규모가 올해보다 10% 이상 늘어난다는 점도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해 투자 여력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줄이고 어떤 사업에 집중할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재정 확대는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히 지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의 우선순위를 과감하게 재편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지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전력과 용수, 교통 등 기반시설을 신속히 공급하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다만 재정이 특정 산업을 직접 끌고 가는 방식보다는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규제를 개선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은 마중물이어야지, 민간 투자를 대신하는 역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처음으로 생중계한 점은 긍정적이다.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정책 결정 과정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공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는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 투자 성과까지 국민 앞에 꾸준히 설명하고 검증받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800조원 예산 시대는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다. 국가 재정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정부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예산 규모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느냐다.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재정 건전성이라는 두 과제를 함께 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번 재정 전략의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