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I가 바꾸는 신약개발…‘속도 혁명’과 ‘현실의 벽’ 사이

시사1 장현순 기자 | 인공지능(AI)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단백질 설계, 임상 전략 수립까지 연구개발(R&D) 전 과정에 AI가 빠르게 스며들면서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AI를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투자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국내 기업들도 오픈 이노베이션과 AI를 결합한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초기 연구 효율은 크게 높였지만 실제 임상 성공과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인간의 복잡한 생물학적 특성을 넘어야 하는 만큼, AI 혁신이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AI는 피할 수 없는 호랑이”…신약개발 패러다임 변화 = 글로벌 제약업계는 AI를 단순한 연구 도구가 아닌 연구개발 방식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바라보고 있다. 13일 제약계에 따르면, 다케다 최고과학책임자(CSO) 겸 연구총괄인 크리스토퍼 아렌트 박사는 최근 바이오USA에서 “AI는 우리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호랑이(Tiger)’”라며 “AI를 외면하거나 변화에 뒤처지면 미래에는 의미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AI의 핵심 가치는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품질 향상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발 과정에서 실패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조기에 걸러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발굴해 전체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다케다는 개발 중단을 검토하던 단백질 치료제 후보물질을 AI 기반 단백질 설계(De novo design) 기술로 재설계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으며, 해당 후보는 올해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렌트 박사는 “현재 10~15년 걸리는 신약 개발 기간도 AI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통합되면 절반 수준까지 단축될 수 있다”며 “전임상 단계는 이미 과거보다 두 배 가까운 속도로 진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효율 높였지만…“임상 성공은 또 다른 문제” = 하지만 AI가 제약 산업의 모든 난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AI가 단백질 구조 예측과 약물 표적 탐색 등 초기 연구 효율을 크게 높였지만,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여전히 높은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들은 AI가 유망한 후보물질을 제안하면 연구원이 이를 검증하고 다시 AI가 학습하는 이른바 ‘루프형 연구실’을 운영하며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단 신약 개발은 시간이 갈수록 비용이 늘고 속도는 오히려 느려지는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라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빅테크 AI 기업들도 “AI가 여러 병목현상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임상 성공률을 점진적으로 높여갈 것”이라면서도 “(현재 AI 기반 신약개발 관련) 이제 겨우 야구 경기 2회 말 정도에 불과해 성과를 입증하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도 AI·오픈이노베이션 확산…“K신약 경쟁력 높인다” =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AI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결합한 전략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바이오텍 OTR테라퓨틱스와 항암 후보물질 공동 발굴 계약을 체결하며 중국 혁신신약 생태계와 협력을 확대했다. SK바이오팜도 생성형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과 손잡고 중추신경계(CNS) 치료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종근당 역시 최근 R&D 자회사 ‘뉴라테온’을 설립했다. 뉴라테온은 종근당 효종연구소 내 기술연구소를 독립시킨 회사다.

 

업계에서는 AI와 기업 간 협력이 결합될수록 부족한 기술은 보완하고 강점은 극대화하면서 글로벌 신약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가 신약개발의 속도를 높이고 성공 가능성을 키우는 강력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실제 환자에게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마지막 관문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약산업의 AI 혁신 역시 기술과 임상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