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장현순 기자 | 과자와 빵, 음료, 맥주, 빙과류는 물론 제지·철강 산업의 핵심 원재료인 전분·전분당 가격을 7년 넘게 담합한 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제재를 받았다. 정부의 할당관세 혜택을 받으면서도 가격 인상과 인하 시기를 사전에 짜 맞춰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4개사가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7년 5개월 동안 사업자 간 거래(B2B) 전분·전분당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총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5월 밀가루 가격 담합 사건에서 7개 업체에 부과한 6710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공정위 담합 제재 사상 역대 최대 과징금이다. 공정위는 검찰 요청에 따라 해당 법인과 임직원도 앞서 고발했다.
◆원가 오르면 함께 올리고…내릴 땐 최대한 늦춰 = 공정위에 따르면 4개 업체는 전분당의 원료인 수입 옥수수를 공동 구매하는 구조를 이용해 가격을 조율했다. 정부는 국민 물가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2021년부터 매년 약 200만톤의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했지만, 업체들은 이를 가격 경쟁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대신 2018년부터 총 13차례에 걸쳐 판매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를 사전에 합의했다.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하게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8차례 가격 인상을 공모했고, 반대로 원료 가격이 하락했을 때는 거래처의 가격 인하 요구에 공동 대응하며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적용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5차례 담합을 이어갔다. 특히 대형 거래처에는 일부 가격을 조정하는 대신 중소 거래처와 대리점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해 수익을 극대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격 공문까지 함께 작성…우체국서 발송 여부 확인 = 담합 방식도 조직적이었다. 공정위 조사 결과 4개 업체는 가격 변경 공문에 담길 인상 폭과 적용 시기, 환율과 원료가격 등 가격 인상 근거는 물론 공문 발송 시점까지 사전에 합의했다. 합의한 날짜에는 서로 회사를 방문해 공문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했고, 우체국까지 동행해 공문이 실제 발송되는지도 점검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처와 가격 협상 과정에서도 역할을 나눴다.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업체가 협상을 주도하면 다른 업체들은 합의 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이른바 ‘품앗이 대응’으로 거래처가 목표 가격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예를 들어 목표 가격을 1㎏당 730원으로 정한 경우 주관 업체는 730원을, 나머지 업체는 735~740원을 제시해 실수요처가 730원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점유율 90% 넘어…원가 내려도 이익은 증가 =공정위는 담합의 파급력이 컸던 이유로 시장 지배력을 꼽았다. 국내 B2B 시장에서 이들 4개 업체의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에 달해 사실상 시장 가격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였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에는 판매가격을 1㎏당 최대 971원까지 올려 담합 초기인 2018년(559원)보다 최대 73% 인상했다. 이후 원료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판매가격은 상대적으로 적게 내리면서 수익성을 오히려 개선했다. 실제 대상의 영업이익은 2023년 901억원에서 2025년 1505억원으로, 사조CPK는 같은 기간 140억원에서 361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 같은 담합으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 규모가 6조525억원에 달하며, 원가 부담이 식품업체와 제지·철강업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전가됐다고 판단했다.
◆가격 다시 정하라…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 공정위는 과징금과 함께 법 위반 행위 금지 명령,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도 함께 부과했다. 이에 따라 4개 업체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분당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을 기준으로 독자적으로 다시 결정해야 하며,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은 밀가루와 인쇄용지 담합 사건에 이어 네 번째다. 공정위는 장기간 담합이 지속됐고 과점 시장 구조상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부의 관세 지원 정책 아래에서도 가격 경쟁 대신 장기간 담합을 이어가며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소비자 부담을 키운 중대한 위법행위”라며 “담합 재발 방지를 위한 감시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