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산업지도, ‘정치’ 아닌 ‘시장’이 그려야

정부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국가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을 지방으로 확산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목표는 시대적 과제다. 반도체와 AI를 국가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방향 역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과정과 원칙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호남권에 제2 반도체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반도체 제조시설(FAB) 4기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투자 규모만 80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반도체 팹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연구개발 역량, 숙련 인력, 협력업체, 장비 공급망까지 집적된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한번 입지가 결정되면 수십 년간 국가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객관적인 기준과 충분한 검증을 통해 입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발표 과정에서는 정부가 기업보다 앞서 특정 지역을 사실상 예고하고, 기업이 이를 뒤따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지원하는 역할이어야지, 투자 입지를 결정하는 주체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야권에서는 관치경제라는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 비판의 타당성을 떠나 정부 스스로 이런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균형발전의 원칙 역시 보다 명확해야 한다. 이번 발표에서 호남은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를 배정받았지만 영남은 기존 제조시설 고도화 수준에 머물렀다. 대구·경북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기반과 풍부한 전력 여건을 갖춘 지역으로 평가받아 왔다. 충청 역시 반도체 생태계가 이미 형성돼 있다. 그렇다면 왜 호남이 선택됐는지, 다른 후보지와 어떤 기준으로 비교·평가했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정책이다. 그만큼 결정 과정도 정치가 아니라 시장과 산업의 논리에 기초해야 한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치밀한 검증, 공정한 절차를 통해 국민을 설득할 때 비로소 메가프로젝트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