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의 세상을 밝히는 힘(23)] 어느 공무원이 보여준 '달랑 셔츠 한장'의 울림

 

지난 6월 11일, 정부세종청사 5동 기획예산처 중회의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나는 적극행정 우수공무원 1차 평가 모니터링단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함께 했다.

 

18명의 사무관이 차례로 입장해 각자의 과제를 발표했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친 정책의 여정을 압축해 담아내야 하는 자리였다.

 

탄소시장을 새로 설계한 이야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실질적으로 보상하는 수당 체계를 만든 이야기, 10개 부처를 하나로 묶어 7,540억 원 규모의 AI 사업을 흔들림 없이 끌고 나간 이야기.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숫자와 성과 뒤에는 협의하고, 설득하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선 사람의 땀과 노력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발표가 중반을 넘어설 무렵이었다. 단정한 차림의 발표자들 사이로, 달랑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사무관한 명이 발표석에 앉았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의아함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는데,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양해를 구했다. 최근 현안으로 연일 야근을 하느라 이틀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전날은 밤을 꼬박 새우고 곧장 발표장에 나오느라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했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지난 30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후배를 대하는 마음으로 동정을 느낌과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비록 지쳐보이긴 했지만 자신이 추진해 온 업무 성과를 발표하는 순간 만큼은 눈빛이 살아있었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목소리 또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적극행정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되어 공직사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런만큼 실제 현장에서의 공무원들은 일하는 방식에서나 공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놀라보게 달라졌다. 과거 혁신보다는 관행에 치우치던 공무원의 모습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극행정 문화가 이미 자리잡은 모양새다.

 

이날 발표된 18개 과제를 돌이켜보면, 그 하나하나가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이었다. '할 수 없다'고 말하기 쉬운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진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기존 배출권거래제의 틀로는 온실가스 감축에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새로운 시장 생태계를 설계한 사람. 부처 간 칸막이에 가로막힌 협의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도 끝내 공정수당의 윤곽을 잡아낸 사람. OECD 보고서의 불리한 문구를 바꾸기 위해 비공식 채널까지 총동원해 논리를 관철한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막혔을 때 멈추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종종 공직사회를 향해 냉소를 던진다. 복지부동, 관료주의, 책임 회피. 그러한 말들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세종청사의 회의실에서 마주한 공무원들의 모습에서는, 그런 냉소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직 국민을 향한 적극행정의 뜨거운 열기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심사위원으로서 나는 냉정해야 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야 했고, 누군가는 선발되고 누군가는 탈락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이 자리에 발표한 모든 분들께 100점을 드리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은 움직인다. 그리고 그 힘은, 밤을 지새우고도 눈빛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서 온다. 그날 그 셔츠 한 장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적극행정 공무원의 상징처럼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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