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의 비극은 아직 진행형

 

시사1 김재필 기자 |호국의 달에 찾은 국립현충원, 열 지어 늘어선 차가운 비석들 사이로 한 여인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두 팔로 감싸 안은 것은 차가운 화강암 비석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누군가의 온기로 다가온다. 거친 비석 위로 고개를 떨군 그녀의 어깨는 소리 없는 울음으로 번져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953년 6월 12일 OO 지구에서 전사’. 전쟁의 포성이 멈추기 불과 한 달 전, 누군가가 평화를 코앞에 두고 이곳에 잠들었다.

 

그날로부터 74년이나 지났건만, 비석을 부여 잡은 저 가녀린 손끝에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핏빛 통곡이 머물러 있다. 전쟁의 비극은 누군가에겐 교과서 속의 박제된 역사로 기록 되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아침에도 가슴을 후벼 파는 현재 진행형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나는 여인의 등 뒤에 씌인 '38'이라는 숫자를 보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운명의 조롱일까. 묘역의 위치를 알리는 저 숫자는 공교롭게도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았던 '38선'을 강렬하게 환기 시킨다.

 

여인이 흐느끼는 이유, 저 많은 비석이 여기에 세워져야 했던 것과, 우리 민족이 아직도 서로를 온전히 안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저 숫자 하나에 압축되어 있다.

 

단순한 구역 표시판이건만 나의 시선엔 분단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이정표로 보인다. 여인의 슬픔이 개인의 상실을 넘어 민족의 상처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흑백의 침묵 속에 묻힌 저 38번의 구역에는 얼마나 많은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 딸'들의 눈물이 스며들었는가. 38선은 지도 위에서 사라졌을지 몰라도, 이곳 현충원의 38구역에서는 여전히 그 선이 남긴 생채기가 아물지 않고 있다.

 

이는 비석을 부여잡은 여인의 손이 비극의 증거이자, 잊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비석의 행렬은 우리가 짊어진 역사의 무게다. 나는 셔터를 누름으로써, 박제될 뻔한 전쟁의 슬픔을 오늘날의 우리 앞으로 생생하게 끌어다 놓고 싶었다.

 

오늘도 38구역의 바람은 차갑고, 그곳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비명이 비석마다 낮게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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