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1년] 실용외교로 동북아 새질서 초석 닦다

시사1 윤여진 기자 |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녹록지 않은 국제 환경과 마주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더욱 거세진 국제 통상 압박에 대응해야 했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동북아 정세까지 겹치며 한국 외교는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그러나 출범 1년을 맞은 현재, 외교가 안팎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통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한중 관계를 복원하고, 한일 협력을 실용적으로 관리하며 동북아 외교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익이 기준”…실용외교 시대 선언 =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특정 진영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국익과 실질적 성과를 우선하겠다는 의미였다. 안보에서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고, 경제와 통상 분야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며,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법이 미·중 갈등 심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외교 노선이라고 평가한다.

 

◆경주 APEC, 한국 외교 역량 증명한 무대 = 이재명 정부 외교의 첫 번째 분수령은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였다. 21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회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력을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정부는 회원국 합의를 통해 공동문서인 '경주선언'을 채택하며 다자외교 복원에 성공했다. 경제적 성과도 적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들의 90억 달러 규모 투자 계획 발표를 이끌어냈고,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기업인 엔비디아로부터 대규모 GPU 공급 약속을 확보하면서 국가 AI 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5년 만의 통화스와프 연장…한중 관계 복원 가속 = 한중 관계는 지난 1년 동안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분야 중 하나다.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성숙한 발전'에 합의했다. 이후 70조원 규모의 원·위안 통화스와프 계약이 연장됐고, 경제·산업·문화 등 6개 분야 협력 양해각서도 체결됐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복원한 것은 실용외교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과거사는 관리, 미래 협력은 확대…한일관계의 새로운 접근 = 한일 관계 역시 이전 정부들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역사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안보 협력은 별도로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채택했다. 갈등 현안은 원칙적으로 대응하되, 양국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에너지 안보, LNG 및 원유 협력, 공급망 안정화, 첨단산업 협력,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이는 역사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 전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2기 시대, 한미동맹의 새로운 시험 =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외교 과제는 단연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이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도 강력한 통상 압박을 가했다. 한국 역시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핵심 수출 산업이 관세 압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는 정상외교를 통해 조기에 협상 채널을 구축했고, 관세 문제와 투자 협력을 연계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바탕으로 상호 관세 수준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핵추진잠수함 협력, 원자력 분야 협력,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 등 안보 현안에서도 진전을 이루며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강화했다.

 

◆‘마스가 프로젝트’가 보여준 한국형 외교 전략 =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이 '마스가(MASGA)' 프로젝트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과 자본, 운영 경험을 활용해 미국 조선업 재건을 지원하는 한미 협력 구상이다. 한국은 관세 협상 과정에서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며 협상 주도권을 확보했다. 단순히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강점을 협상 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이는 외교와 산업 정책, 통상 전략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안보 외교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동북아 외교의 새 좌표 찾기 =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의 외교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균형과 실용'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했고, 일본과는 미래 협력 분야를 넓히며 동북아 외교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했다. 동시에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신뢰도와 위상을 회복하는 데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물론 향후 과제도 적지 않다. 미·중 전략 경쟁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산도 계속될 전망이다. 북한 변수 역시 여전히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출범 첫해 보여준 실용외교의 성과는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국익 중심의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