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1세 박춘재 어르신 “인생, 이정표 남기는 과정”

시사1 신옥 기자 | 숫자 ‘101’은 단순한 나이를 넘어,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가 지나온 시간을 가리킨다. 1926년생 박춘재 어르신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재건의 격랑을 몸으로 통과하며 살아온 ‘현대사의 증언자’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오래 산 노인’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가다듬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를 향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현재진행형의 기록자’였다.

 

<시사1>과 박춘재 어르신의 인터뷰는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 14일 오후 조용한 공간에서 진행됐다. 청자켓과 붉은 셔츠 차림의 그는 101세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또렷한 눈빛과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그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기억을 꺼내 들었고, 때로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당시를 복기했다.

 

“인생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무엇입니까”를 묻자 그의 답은 짧지만 단단했다.

 

“나는 피조물일 뿐이며, 내 삶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뜻 안에서 주어진 소명을 찾고 묵묵히 걷는 것이 인생입니다.”

 

물질과 권력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그의 소신은 이어진 답변에서도 반복됐다.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말한 것.

 

“물질과 비리에 영혼을 팔지 않은 것입니다. 육체는 돈에 묶이지 않으려 했고, 정신은 변하지 않는 가치에 두었습니다.”

 

101세의 건강 비결에 대해 그는 ‘운동’이 아닌 ‘호흡’을 말했다. 이미 격렬한 운동은 내려놓았지만,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만의 호흡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들숨, 멈춤, 날숨을 1:3:2 비율로 합니다. 한 호흡이 약 45초입니다. 그 호흡을 멈추지 않는 것이 지금의 저를 유지시킵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침대 위에서 45초의 깊은 호흡과 기도로 몸과 마음을 깨운 뒤, 오전 8시에는 빵과 소시지, 커피로 식사를 한다. 이후 긴 명상과 사유의 시간이 이어진다. 오후엔 컴퓨터 앞에 앉아 직접 요리책을 만들며 ‘디지털 요리사’로 변신한다. 지금까지 정리한 레시피만 119개에 이른다. 그는 이 레시피로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하는 시간을 가장 큰 기쁨으로 꼽았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목소리는 잠시 낮아졌다. 11세 무렵 가족과 함께 대마도로 밀항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배고픈 이들에게 몰래 누룽지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은 그에게 분노가 아니라 ‘버티는 힘’이 됐다고 했다.

 

해방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기대와는 달랐다. 그는 “세상이 뒤집혔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도시로 나왔을 때는 이미 질서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시장은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했습니다. 재산을 지킬 틈도 없었습니다.”

 

이후 귀국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마산으로 돌아왔던 순간은 생존에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당시 그는 미 8군 카투사 1기로 참전하며 평양까지 이동했다. 그가 본 전쟁의 풍경은 단순한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균열’이었다.

 

“창고에는 식량이 넘쳐났지만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순을 보며 인간 사회의 구조를 처음으로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전쟁을 통해 얻은 결론을 단호하게 말했다.

 

“전쟁은 결코 인간의 방법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의 시선은 조금 더 먼 곳을 향했다.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지 말고 문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움을 멈추지 마세요.”

 

장수의 의미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인생을 나그네라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봅니다. 인생은 흔적을 남기는 과정입니다. 내가 지나온 자리마다 이정표를 세워야 뒤따르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습니다.”

 

101년을 지나온 그의 말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다음 세대를 향해 건네는 조용한 요청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