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국민의힘 하남갑 후보가 최근 출마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치인의 눈물이 늘 그렇듯, 그 장면은 곧장 해석의 대상이 됐다.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읽는 시선도 있었고, ‘정치적 연출’이라는 냉소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그 눈물이 과연 책임을 동반한 감정이었는가, 아니면 책임을 비켜가기 위한 정서적 장치였는가 하는 점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표현은 거칠지만,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 완전히 낯선 평가만도 아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는 일관된 책임 인식이라기보다, 거리 두기와 시간 끌기, 그리고 언어의 완곡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유감”,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 같은 표현들이 반복되며 사건의 본질은 점점 흐려졌다.
그 사이 책임의 중심에 있어야 할 인물들은 여전히 정치 전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위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이들은 권력의 정점에 가까이 있었지만, 그 권력 행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공유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그리고 왜 당시 내부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도 공중에 떠 있다.
문제는 이 공백 위에서 특정 인사들이 여전히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은 사라졌지만, 권력은 남아 있는 기형적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정치인의 눈물은 오히려 구조적 책임을 덮는 장면처럼 비쳐질 위험이 있다. 감정은 강조되지만, 책임은 말해지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가 내놓은 과거의 쇄신안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당명 변경, 청년 중심 정당, 외형적 변화는 분명 눈에 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질문은 간판이 아니라 구조다. 계엄 사태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토양,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권력의 네트워크는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는 것이 과연 쇄신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적 무책임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과는 등장하지만, 책임의 귀속은 흐려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 정치로 복귀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호가호위’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권력에 기대어 영향력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그 권력의 실패에 대해서는 누구도 전면에 서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에서 눈물은 때로 진정성을 드러내지만, 때로는 책임 회피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그 이후다. 무엇을 바꾸고, 누가 책임지고, 어떤 구조를 해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눈물은 감정으로만 남고 정치적 신뢰로 이어지지 않는다.
국민이 보는 것은 더 이상 장면이 아니다. 말과 표정이 아니라 구조와 결과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위에서 흘리는 눈물은 설득력이 아니라 의심을 낳는다. 그리고 그 의심이 커질수록, 정치의 신뢰는 더 빠르게 얇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