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김아름 기자 | 가상계좌를 이용한 신종 금융사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단순 계좌 제공 행위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입금만 해주면 수익을 주겠다”는 식의 고수익 제안이 범죄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금융당국이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는 등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결제대행사(PG) 가맹점 권한을 활용해 가상계좌를 대량 개설한 뒤 자금을 분산 이체하는 방식의 금융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가상계좌가 범죄 자금 인출과 세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하고, 타인에게 계좌를 제공하거나 자금 이체를 대신해주는 행위 자체가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수법은 대학가와 구인구직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대구·강원·인천 지역 주요 대학 커뮤니티와 채용 사이트에는 ‘재택 정산업무’, ‘외환상담 보조’ 등을 내세운 광고가 잇따르고 있으며 입금액의 1~2%를 수당으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지원자를 유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범죄 조직은 대포통장 단속이 강화되자 상대적으로 개설이 쉽고 추적이 어려운 가상계좌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피해로 이어질 뻔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인천 주안동에 자취하는 대학생 박씨는 시중은행 로고를 사용한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가상계좌 개설 후 자금을 이체하는 ‘테스트 업무’를 요구받았다. 박씨는 “범죄가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를 단순 아르바이트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소액 수당을 미끼로 개인에게 법적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법원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익 제안을 받은 경우 범죄 가능성을 인지했어야 한다고 보고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추세다. 단순히 계좌를 빌려줬다는 주장이나 ‘몰랐다’는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계좌 등 접근매체의 양도·대여를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사기방조 혐의까지 더해질 경우 처벌 수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처벌 이후에도 금융거래 제한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
실제 대구지방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넘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했으며, 다수의 법인 계좌를 개설해 범죄에 제공한 사건에서도 유죄 판단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타인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대신 이체해주는 행위는 범죄 공모로 인정될 수 있다”며 “고수익을 미끼로 계좌 사용을 요구하는 제안은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의심거래보고(STR)는 2022년 82만여 건에서 2023년 90만여 건으로 10% 이상 증가했다. 금융거래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자금 이동 경로도 다양해지고 있어, 금융사기 수법 역시 갈수록 교묘해지는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