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의 세상을 밝히는 힘(17)] AI는 변호사를 대체하는가, 아니면 재정의하는가

  • 등록 2026.01.19 13:23:02
크게보기

사라지는 건 '직업'이 아니라 '업무'

국가법정교육진흥원 대표 하충수 박사

 

어제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한 주부의 사연을 접했다. 지인에게 가전제품과 명품 구매 캐시백 사기를 당한 그는 변호사 선임비 150만 원이 부담스러워 소송을 망설이다가, 답답한 마음에 AI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는 법률 판단과 함께 증거 수집 방법, 타임라인 구성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핵심 증거와 보조 증거를 구분해주었고, 고소장 작성까지 도왔다. 5개월 후, 그는 승소했다. 변호사 없이.
 

이 사연이 알려지자 "이제 변호사가 정말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 사례는 AI 시대 법률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법률 업무를 일반인이 AI의 도움으로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리걸테크(Legal Tech)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계약서 자동 작성, 판례 검색, 소송 결과 예측, 법률 상담까지. 과거 변호사들이 밤을 새워 하던 일을 AI는 몇 초 만에 처리한다. 단순 법률 자문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대형 로펌들은 신입 변호사 채용을 줄이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위기다. 하지만 이 변화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앞서 소개한 주부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AI가 도운 것은 판례 검색, 증거 정리, 문서 작성 같은 정형화된 업무였다. 비교적 단순한 사기 사건이었고, 증거가 명확했으며, 법리 다툼이 크지 않았다.
만약 이 사건이 복잡한 기업 간 분쟁이었다면? 법리 해석이 엇갈리는 첨예한 사안이었다면? 상대방과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면? 과연 AI만으로 충분했을까?


앞으로의 경쟁력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검색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진짜 경쟁력은 판단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인간의 감정과 맥락을 읽을 수 있는가, 기술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 공공성과 윤리를 설계할 수 있는가에 있다. AI는 계산한다. 인간은 결정한다. 이 경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몇 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바둑 기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바둑계는 오히려 더 활발하다. AI를 연구 도구로 활용하면서 인간 기사들의 실력은 더 높아졌고, 바둑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AI 기술의 발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직업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기다. "변호사가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떤 변호사가 살아남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변호사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AI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던져지고 있다.

 

나의 직업에서 AI가 이미 대신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 AI를 경쟁자가 아니라 도구로 쓰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10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나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이고 그 질문에 답하려는 용기다.

하충수 기자 cody301@naver.com
Copyright @시사1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