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포스트 메뉴

전두환, 광주 직접 내려와 사살명령...美 정보원 39년만에 증언

5.18북한군 개입설 한국당 국회 공청회 2개월여만에 중요한 증언 나와...첩보 5건 백악관에 보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1980년 5월21일) 직전 광주를 방문해 시민군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인 김용장 씨는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이 당시 보안 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오후 전후로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74명이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미 육군 방첩부대 501 정보여단 광주파견대 군사정보관으로 근무하며 5.18상황을 미국에 보고한 당사자다.

김 씨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시민군에 대한 사살명령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전두환이 광주를 다녀간 당일 오후 1시쯤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었고, 전씨가 도착한 당일과 27일 두 차례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당시 회의에서 사살명령이 전달됐다고 하는 것이 제 합리적인 추정"이라며 "헬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비행계획서를 파기하지 않았다면 자료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발포명령과 사살명령은 완전히 다르다"며 "전씨는 발포명령권자가 아닌 사격명령권자”라고 말했다. 발포명령은 목숨이 위험할 경우에 발포하는 자위적 조치다발포는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방어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 등이 제기하는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 "전두환이 허위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 정찰위성 2대와 공군 조기경계관제시스템(AWACS)이 광주와 한반도를 정밀 감시해 북한국이 침투할리 만무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왔다는 주장은 미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인데, 당시 한반도에서는 두 대의 위성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아울러 북한군 600명이 침투하려면 잠수정이 약 30척 필요한데, 당시 북한은 그 정도 규모의 잠수정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씨는 "북한 특수군이 했다는 방화, 총격, 장갑차는 일반 시민이 했다고 보기는 극렬한 행위인데 남한 특수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특수군이 직접 벌인 소행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며 "유언비어 유포 역시 이들이 시민으로 위장해서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행위는 빌미를 만들기 위한 고도 공작을 전두환이 벌인 것이다"고 주장했다.김 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제1전투비행단(광주 송정공항)에 주둔한 주한미군 501여단에서 근무했던 유일한 한국인 정보요원이었다.

 

김씨는 이 내용을 포함한 40여건의 첩보를 미국 정부에 공식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첩보는 정보보안사령부를 통해 국방성이 취합하여 백악관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수집한 40여건의 정보를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고, 그 중에서 5건이 백악관에, 3건이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에 보고됐다고 이같이 밝혔다.

 

아울러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이뤄진 시신 소각, 헬기사격, 광주 교도소 습격, 공수대원에 의한 성폭행도 제 첩보 40건 속에 들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시민 행세를 하던 사복 군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 후 30∼40명가량으로 보고했다"며 "그들의 나이는 20∼30대로 젊은이 들이었고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다"고 밝혔다.

 

 

 

배너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