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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협객일까? 정치깡패일까?

[서평] 재야 사학자 김상구의 <김두한 출세기>

과거 영화 ‘실록 김두한’, ‘협객 김두한’, ‘김두한’, ‘김두한과 서대문 일번지’, ‘김두한 형 시라소니형’ ‘장군의 아들’과 드라마 ‘야인시대’ 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킨 대중매체에 의해 김두한을 미화시킨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또한 홍성유의 소설 ‘인생극장’을 비롯해 만화, 음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김두한은 우리사회 이곳저곳에서 좋은 이미지로 미화됐다. 이로 인해 정치깡패, 깡패정치인인 김두한은 의적, 협객, 항일투사, 정치가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재야 사학자 김상구의 <김두한 출세기>(책과 나무, 2015년 11월)는 국회의원을 두 번(3대, 6대)이나 역임한 김두한(1918~1972)의 실체를 파헤치려 노력한 책이다.

 

“영화나 TV에 방영된 역사물의 내용을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수년 전 방영돼 폭발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야인시대’나 배우 박상민을 출세시킨 영화 ‘장군의 아들’, 홍성우의 소설 ‘인생극장’ 등은 야사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실제 역사와 구별하기를 즐겨하지 않은 게 요즘의 세태이다. 아무튼 김두한을 통해 항일투사 김좌진이 덩달아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이 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편집된 이미지를 통해 누군가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무학에 가까운 학벌에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국회의원을 여섯 번을 출마해 두 번이나 역임했고, 전통무예나 호신술을 익힌 바 없음에도 종로와 명동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적인 주먹으로 알려진 사람이 김두한이다. 딸 김을동(전 국회의원)과 아들 김경민은 부친 김두한과 많이 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두한이 청산리 전투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않은 채 침소봉대해 그를 알리는데 일조했다.

 

김두한 유족들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신안동 김씨 문충공 상용파 족보에 김두한이 올라, 안동김문에서 김두한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딸 김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김좌진 장군의 모친을 비롯해 장군의 부인 오숙근 여사, 김두한의 부인 이재희 여사와 함께 4대가 오붓하게 처마 밑 마루에 앉아 함께 찍은 흑백사진도 증거다. 김좌진 장군의 모친과 본처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진이다. 특히 국가보훈처는 김두한의 일가를 김좌진 장군의 유족으로 인정해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연금 등 보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족들은 가문과 본처 등이 김두한을 장군의 아들로 인정하고 나아가 정부까지도 확인해 주고 있는데, 더 이상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해 왔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가설처럼 자식이 아니라면 정부와 김두한의 유족 그리고 일부 언론과 역사학자들이 오히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셈이라는 문제제기를 한다.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6개월 앞두고 지난 2011년 11월 김두한의 딸 김을동이 도올 김용옥이 <신동아>에 기고한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주장해 대해 반박 성명을 내고 도올에게 사죄를 요구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도올은 김두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김두한은 선천적으로 재능을 부여받은 탁월한 쌈꾼이었다. 그 쌈질이란 무슨 일본의 무술(유나나 가라테)을 배운 것도 아니고 조선 전통무술을 배운 것도 아닌 순 경험적 체득의 기술인데, 김두한이 주먹질보다는 다리질에 탁월했다는 것은 그의 삼질이 조선 것이다(택견은 원래 발길질의 놀이다)... 김좌진의 신화는 일제하의 김두한의 성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김두한의 신화가 신화로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오로지 해방 후 그의 애국심이 잘못 전도된 반공투쟁의 행각과 더불어 시작된 것임을 못 박아 둔다.” -분문 중에서-

 

저자는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친자확인 DNA감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친자확인소송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데 2007년 2734건이던 것이, 2011년 5050건으로 껑충 뛰었다. 친자확인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DNA 감식에 대한 신뢰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발가락이 닮았다’를 쓴 김동인이 DNA 감식을 알고 있었다면 명품소설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 정말 맞느냐 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히 끝낼 수 있다. 김좌진과 나혜국 사이에 태어난 김철환의 아들 김원동과 김두한의 아들 김경민 그리고 김좌진의 동생 김동진의 손자인 김일동 등의 DNA 감식을 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진다.” -본분 중에서-

 

무엇보다도 해방공간에서 김두한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인물이다. 당시 최대극우청년단체인 대한민청 감찰부장으로서 중앙국장 폭파, 철도파업진압, 전평본부 습격, 경성전기 파업진압, 조선기계제작소 파업진압, 남로당 대회장 습격 등 정치적 사건에 깊이 개입했다.

 

김두한은 미군CIC,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등과도 가깝게 지냈고, 김구, 이승만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었다.

 

미군정시절 자신과 죽마고우였고 라이벌이었던 정진룡을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1948년 정부수립 후 사면을 받았다. 출옥 후 정치가로 변신해 국회의원 여섯 번을 출마해 두 번 당선됐다. 정치깡패였던 김두한이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자유당, 노농당, 진보당, 한독당, 신민당 등 수없이 정당을 전전했다. 특히 노동운동 파괴에 앞장섰던 김두한은 한국노동계의 최고지도자가 된 과정도 연구대상이고,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반공투쟁전선의 최선두에 섰지만 반공법으로 옥로를 치르기도 했다.

 

5.16쿠데타 군부세력의 군정연장을 적극 지지했던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되고 실행해 옮겼던 국회 오물 투척사건은 그를 야당투사로 만들었다.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해 삼성과 유착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뿌린 사건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카타리시스를 안겨줬고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투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5.16쿠데타가 성공하고 군부는 정치깡패들을 모아 서울 시가지 행진을 하는가하면 혁명재판을 열어 정치깡패였던 이정재, 임화수 등을 사형선고 후 집행을 했다. 당시 이 광경을 김두한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5.16쿠데타 이듬해인 62년 3월 1일 제43회 3.1절 기념식장인 서울운동장에서 박정희는 김좌진 장군을 대신해 건국훈장중장을 수여했다. 박정희와의 첫 인연이었다. 이후 김두한은 애국단 단장을 맡아 구정치인 정계은퇴를 부르짖으며, 군정연장을 지지했다. 애국단을 만들어 박정희를 열렬히 지지했던 김두한은 67년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민당의 수원조직책으로 박정희 낙선을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당시 5월에 치러질 국회의원선거 유세도중 ‘북괴에는 농촌까지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우리 농촌은 헐벗고 있다’라는 요지의 유세로 반공법을 위반해 구속됐다. 그 정도 발언은 봐줄 수 있는 문제였다. 박정희 공화당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구속됐다고 봐야 한다.

 

김두한이 사망한 날은 1972년 11월 22일이다. 바로 유신쿠데타의 산물인 유신헌법의 찬반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일에 사망한 것이다. 고혈압 심장병으로 입원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지 4개월 만이었다. 뉴스메이커로 늘 화제를 몰고 다녔던 김두한의 죽음을 언론도 외면했다. 이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유족들의 주장처럼 타살 의혹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유신권력자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은 존재로 인식해 김두한을 제거했을 가능성도 열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화화된 김두한의 이미지를 넘어 이제 김두한의 실체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의적이든 협객이든 폭력의 해악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모방을 하는 풍조는 대한민청, 서북청년단, 백의사 등 청년단체들의 살인과 테러,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1980년 광주학살,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 등 독재정권과 군인들의 불법적인 무력행사마저 용인하는 사회풍조를 낳게 할 우려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 김상구는 대부분 사람들이 진리 또는 진실이라고 믿는 사안에 반기를 드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임시정부 정통론 폐기’ ‘종교법인법 제정’ 이 네 가지 과제가 한국의 정직한 역사정립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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